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기 Oct 16. 2017

위로

올해 남부지방법원 논스톱 국선변호인으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다. 논스톱 국선변호인이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하여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부터 1심이 끝날 때까지 피의자의 국선변호를 해주는 변호사이다.


지금까지 약 40건의 영장을 하였고, 그중에서 영장이 기각되지 않는 약 30건의 국선변호를 하고 있다.


무죄를 주장하는 건은 10건 정도 되고, 대부분의 사건은 자신의 공소사실은 인정하고 재판부에 읍소 하는 사건들이다.

무죄 주장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수사부터 참여를 하고, 합의부 사건인 경우에는 필요하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판부에 읍소, 즉, 양형사유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생활곤란, 지병, 전과가 없는 점, 피해자와 합의를 한 점, 반성을 하고 있는 점 등을 바탕으로 변론을 한다. 그렇기에 공소장을 받고 구치소에 접견을 가면 일단 1)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와 2) 인정한다면 양형사유로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본다.


<서울 남부구치소 전경>


오늘 있었던 공판의 피고인도 대부분의 경우처럼 자신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대략의 사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서 편의점에서 돈 및 물품을 절도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사건이었다. 편의점이었기에 당연히 CCTV도 있었고, 피고인 본인도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순순히 인정하였다. 게다가 20대 중반인데도 전과가 너무 많았다.

구치소에서 접견을 하면서 양형사유에 대하여 물어보았는데, 딱히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그 이후로 혼자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홈리스센터에서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재혼한 어머니와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 장기간 복역하게 되면 어머니와 연락이 끊길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한테 부탁해서 편의점주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해서 편지를 보내주기도 하였고, 인터넷으로 편의점 주소를 찾아서 주소를 직접 알려주기도 하였다.


형사사건의 공판에서는 '변론요지서' 혹은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여 간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아무리 기록을 보고 또 보아도 딱히 양형사유로 주장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20대 중반의 잘생긴 이 청년이 왜 벌써 전과가 많아졌는지, 자신을 믿어주고 고용해 준 편의점 사장의 믿음을 배반하고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어릴 때부터 사회와 어른으로부터 올바른 것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던 피고인의 상황에 마음이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위주로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오늘 공판에 갔다.


형사사건의 피고인으로서 재판을 받는 것이 익숙한 피고인은 덤덤했다. 공소사실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고, 증거관계에도 동의하였더니 재판장께서 더할 것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더 할 것이 없기에 없다 하였고, 재판장께서는 종결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검사에게 구형을 하라고 하였고, 검사의 구형 이후 최종변론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준비해 간 최종변론을 하였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양형사유가 있으므로 피고인에게 법이 허용하는 가장 관대한 처분을 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이 자신을 믿어주었던 피해자의 믿음을 배신하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은 명백히 잘못되었고,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점을 고려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이 어렸을 때, 피고인의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그 이후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혼자 지내게 된 피고인은 노숙도 하고 찜질방, pc방 등지에서 잠을 자는 등 어렵게 지내왔습니다. 피고인을 이끌어주는 어른이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은 범죄에 노출되게 되었고, 여러 전과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구치소에서 출소한 후, 홈리스센터에서 지내며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등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으나 생활고를 겪다가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모든 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홀로 지낸 피고인이 어른 및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였고, 결국 전과자가 되게 된 점에 대하여 고려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어머니와 연락이 끊길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피고인이 의지할 곳은 어머니뿐입니다. 그렇지만 피고인의 반복되는 잘못으로 인하여 재혼한 어머니 역시 더 이상 피고인과 연락을 하며 지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장기간 복역하게 된다면, 피고인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어머니와의 연락이 끊길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점을 참작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이 반성문을 5회나 제출하는 등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에게 용서의 편지를 쓰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이 큰 피해를 입힌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해서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을 참작하여 선처하여 주시기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와 같은 최종변론을 하던 와중에 피고인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정말로 눈물이 없을 것 같았던 피고인이었는데 엉엉 울었다. 이러한 피고인을 보고 재판장께서도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내가 피고인을 위해 한 변론이 이번 범행에 한하여 피고인의 양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안다. 그리고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건넨 위로도 판결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자신을 믿어주고 걱정해주는 이가 있음을, 자신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 것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음을 아는 기회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위로가 되어주는 변호사가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대리기사가 나를 길거리에 두고 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