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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Feb 13. 2020

대리기사가 나를 길거리에 두고 갔다면..

2019년 6월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혈중알콜농도 0.03~0.05% 구간을 신설하여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혈중알콜농도 0.03~0.05%는 평균적으로 소주 한두 잔 정도 마셨을 때 나타나는 수치로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수위가 더 높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음주를 한 이후에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하여 귀가하던 중, 대리운전기사와 싸우게 되어 대리기사가 차량을 도로상에 세워둔 채에 가버린 경우에 운전을 하였다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어 처벌이 됩니다. 다만 최근, 이러한 행위가 긴급피난에 해당되어 무죄로 판단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판례들을 소개하고, 언제 긴급피난이 인정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긴급피난이란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를 말하고, 여기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첫째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고, 둘째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며, 셋째 피난행위에 의하여 보전되는 이익은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 넷째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을 요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6. 4. 13. 선고 2005도9396 판결 참조).


2. 긴급피난에 해당되어 음주운전이 무죄로 판단된 경우


가. 울산지방법원 17고정1158


① 대리운전 기사가 이 사건 승용차를 정차하여 둔 도로는 공소사실에 적시된 새벽 시간에 장시간 승용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보이는 사정, ② 피고인이 이 사건 승용차를 운전하여 간 거리는 약 300m에 불과하여 피고인은 임박할지도 모르는 사고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③ 피고인은 이 사건 승용차를 안전한 곳에 정차하여 둔 후 경찰에 112로 자발적으로 신고하면서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진술한 사정, ④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회적 법익과 그로 인하여 보호되는 법익을 형량하여 볼 때 후자가 보다 우월한 법익에 해당하는 사정을 고려하여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나. 창원지법 19고정162


① 대리운전기사의 정차 위치가 편도 2차로 도로 중 2차로의 오른쪽 끝에 바싹 붙이지 않고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세웠을 뿐만 아니라(이로 인하여 통상적인 주정차의 경우와 비교하여 도로의 교통흐름에 대한 방해의 정도가 더 크게 되었다), 위 지점은 삼거리 앞 정지선으로부터 2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로서, 1차로에 좌회전 차량들이 신호대기하면서 A씨의 차로 인하여 우회전 차량들의 진로가 막히게 된 사정, ② 이로 인하여 A씨의 차량이 해당 위치에 계속 정차되어 있으면 다른 차량의 정상적인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정도가 적지 않고 교통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사정, ③ 주변에 다른 차량이 없을 때 자신의 승용차를 천천히 운전하여 진행한 후 5m 거리에 있는 건물 주차장으로 진입하여 차를 주차한 사정, ④ 주변의 일반 행인에게 차량의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을 고려하여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다. 수원지방법원 2014노6211


① 대리기사가 정차한 곳은 편도 3차로 도로의 2차로이고, 교차로 직전이라 계속 정차하고 있을 경우 사고의 위험이 높은 점, ② 도로변으로 운전한 것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 및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여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라. 판례들의 공통점


긴급피난으로 인정된 경우들의 공통점은, 1) 차량을 방치할 경우에 사고의 위험이 높아서, 2)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리만 짧게 운전했고, 3) 다른 사람들(지나가는 행인, 다른 대리기사)에게 대신 운전을 부탁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경우였습니다.


3. 결론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정말 피치 못한 경우에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음주운전을 하게 되었다면 긴급피난을 주장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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