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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Feb 20. 2018

국민참여재판의 기억-2

국민참여재판 기일까지

공판준비기일



일반적인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법률전문가인 판사 앞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공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바로 공판기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국민참여재판의 경우에는 일반국민들이 배심원으로서 참여하기때문에 공판기일 이전에 '공판준비기일'을 마련하여 국민참여재판 공판기일 당일에 배심원들이 사건파악 및 평의를 잘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총3번의 공판준비기일을 가졌었다.



피고인의 눈물



1편에서도 썼듯이 이 사건은 피고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범죄가 일어난 장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CCTV상에 찍혀있었다. 또한, 경찰이 피고인이 범행 발생 시각 전에 고시원에서 나와서 범행발생 장소에 갔다가 다시 자신의 주거지로 돌아오는 CCTV화면을 추적한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변호인으로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의 무죄를 믿기 쉽지 않았었고, 피고인을 위한 무죄주장을 어떻게 할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피고인을 많이 만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피고인이 수감되어 있는 남부구치소로 1주일에 1번꼴로 접견을 갔었다. 처음에는 피고인에게 피고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범죄발생지에 들어가는 CCTV 화면과 나오는 CCTV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실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믿기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랬더니 피고인이 "그러면 변호사님을 돌아가세요. 저 혼자 하겠습니다."라고 답을 하였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을 위와 같은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접견실안에서 싸우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피고인이 갑자기 엉엉 울었다. 정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엉엉 울면서 "변호사님, 이번에는 정말 제가 한 것이 아니에요."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 머리를 큰 망치로 쎄게 한 대 맞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알겠습니다. 저 이제 정말 선생님을 믿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하고 사무실에 돌아왔다.



합리적인 의심



피고인에게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막막하였다. 그래서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수사기록과 CCTV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면서 국민참여재판기일 당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며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배심원들이 피고인이 무죄라고 생각할까?'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다. '피고인이 이 범행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주목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1) CCTV 속의 인물이 피고인이 아니고 닮은 사람이다(그렇다면 사건 당일 피고인의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2) 설사 CCTV 속의 인물이 피고인이더라도 피고인이 범행을 하지 않았다(즉, 이 사건 범행을 피고인이 하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할 동기가 없었다)는 방향으로 변론방향을 결정하였다.

변론방향을 결정하고 다시 피고인을 만나러 구치소에 갔다.

피고인에게 1)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입증할 방법이 있는지, 2) 범행을 부인할 동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피고인은 1)은 고시원 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자고 하였고, 2) 범행을 부인할 동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교도소에서 출소 후의 행적 등에 대한 자료가 있다고 하였다.


피고인의 답변을 듣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정리한 결과 최종적으로 변론방향을 결정하였다.

1) CCTV 속의 인물은 피고인이 아니고 닮은 사람이다. 피고인이 거주하던 고시원의 원장의 증언 및 피고인의 핸드폰 통화기록을 통하여 피고인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겠다.

2) 설령 CCTV 속의 인물이 피고인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 범죄발생지에서 발견된 피해품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1번 범죄발생지에서 2번 범죄발생지까지 이동한 시간이 너무 짧다. 그리고 CCTV상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피해품(현금)을 들고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3) 마지막으로 교도소 출소 이후, 자활노력을 하던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하였다고 보기에는 범행동기가 없다.

이렇게 변론방향을 결정하고 보니까 '어쩌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증거신청



이와 같은 변론방향에 따라 공판준비기일에서 1) 고시원 원장에 대한 증인신청을 하였고, 2) 피고인 소유의 핸드폰의 통신기록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의견서에 범죄발생지에서 발견된 피해품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1번 범죄발생지에서 2번 범죄발생지까지 이동한 시간이 너무 짧다. 그리고 CCTV상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피해품(현금)을 들고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의 자활노력에 대하여 피고인이 준비해 준 자료들을 받아서 증거로서 제출하였다.


그 이후 고시원 원장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연락을 하였지만, 본인은 피고인의 알리바이에 대해서 증언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피고인의 통신기록에 대한 사실조회 역시 회신이 왔지만 사건당일 시각에 통화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시원 원장에게는 참여재판기일이 언제이고, 그 전까지 마음이 바뀌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3회의 공판준비기일은 끝이 났고, 마지막 공판준비기일에서 국민참여재판 공판기일이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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