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10월초의 긴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날의 오후에는 경찰서 수사민원상담센터로 상담을 하러 갔었다. 늘 하던 것처럼 민원인들에게 친절하게 상담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제x팀장님께서 수사민원상담센터를 찾아오셨다. 딱 봐도 어젯밤을 새신 것 같이 보이는 피곤한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들고 오셔서 보여주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변호사님, 오늘 새벽에 어떤 사람이 집에서 뛰어내려서 죽었네요. "
너무 담담하게 말씀하셔서 놀랐지만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나도 놀라웠다. 이제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도 그렇게 큰 일은 아니구나...
"그런데 이 분이 유언장을 남겼는데, 이 유언장이 효력이 있을까요?"
자필로 쓴 유언장이었다, 마지막에 지장이 찍혀 있는데 불과 몇 시간 전에 작성된 유언장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드니까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찌 되었든 난 자문을 해드려야 하므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효력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 민법 조문을 찾아보았다.
민법 제1065조(유언의 보통방식)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와 구수증서의 5종으로 한다.
민법 제1066조(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①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하여야 한다.
자필로 쓴 고인의 유언장에는 유언의 내용과 작성연월일, 주소, 성명이 기재되어 있었고, 지장으로 날인이 되어 있었다. 대법원은 “자필 유언장의 주소는 생활의 근거지인 만큼 다른 장소와 구별되게 표시해야 한다."면서 번지수를 포함한 세부 주소까지 모두 적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실제로 주소가 불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는 유언장의 효력은 부정이 되곤 한다. 번지수까지 포함되어 있는 세부 주소까지 적혀 있는 법적으로 효력을 갖춘 유언장을 작성하였다는 것으로 보았을 때, 고인은 우발적 자살은 아니고 계획을 가지고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이 유언장은 효력이 있는 유언장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 유언장에 적혀있는 △△△△공동모금회로 연락을 드려야겠군요. 사실 다른 팀원들은 일단 가족에게 연락을 하여 가족에게 유언장을 전달하자고 하였었거든요. 그런데 유언장에 가족들이 너무 싫어서 그들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부한다고 작성되어 있는데 가족에게 유언장을 전달해주면... 유산이 꽤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족들이 유언장을 찢어버리고 자신들이 상속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변호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자세히 유언장 전문을 읽어보니, '우리 가족들은 XX보다 나쁜 사람들입니다. 제 모든 재산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상 최대의 연휴이자, 추석명절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이와 같은 유언장을 차분히 작성하고, 삶을 포기한 그 마음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혹시라도 다른 유언장이 있다면 '유언의 철회' 등이 문제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팀장님께 여쭤보았다.
"다른 유언장은 없었나요?"
"똑같은 유언장이 거실 탁자 위에 있었어요. 그리고 이 분이 집도 깨끗이 정리해놓고 돌아가셨더라고요."
에휴...
"전 그러면 △△△△공동모금회로 연락하러 가야겠네요. 변호사님 찾아오기를 잘했네요. 명절 잘 보내세요."
팀장님께서 가시고, 옆에 계시던 수사관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변호사님, 그런데 유언장에 저렇게 가족에게 유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고 작성해도 되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가족들에게도 어느 정도 유산이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런데 △△△△공동모금회에서 이러한 일들을 많이 처리해보았을 테니까, 일단 팀장님께서 연락하시면 유족들과 협의하여 일을 처리하시겠죠."
그렇다, 과연 저 유언장의 내용은 효력이 있는 것일까? 유류분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기는 했지만 다른 민원인들이 찾아와서 민원인 응대를 하다가 결국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지금 결론을 내보자면 고인이 그토록 싫어했던 유족들은 △△△△공동모금회에 유류분 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배우자·직계존속 ·형제자매 등 근친자에 한하며, 모든 상속 순위자에게 인정되지는 않는다.
유류분이란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이다. 이러한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상속' 자체가 남아 있는 유족에 대한 부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상속재산의 형성에는 상속인들도 직/간접적인 노력을 하였을 수도 있기에,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민법에서는 피상속인이 생전증여 혹은 유증을 통해 상속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특정 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의 일부를 반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미혼 중년 여성으로서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며 많은 재산을 축적한 고인에게 남아 있는 유족들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을까 혹은 고인의 재산형성에 유족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까? 법은 일반적인 것들에 대해서 규정을 하고,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 법의 적용을 받는 자가 내가 특수하기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명절 바로 직전에 가족들이 싫어서 삶을 포기한 고인이 노력하여 형성한 재산을 유족들에게도 일정 부분이나마 상속시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오늘도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