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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Feb 28. 2018

국민참여재판의 기억 - 3

국민참여재판공판기일

배심원 선정 기일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선정기일로 시작된다. 이 사건은 사형/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7명의 배심원과 1명의 예비배심원을 선정하기로 공판준비기일에 결정하였었다. 또한, 배심원 선정 기일에 이어서 바로 국민참여재판공판기일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었다.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해보는 것이었기에 이 배심원 선정 기일을 어떻게 진행하여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고민 끝에 다른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선정 절차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배심원 선정 절차는 원칙적으로는 비공개이지만 해당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서 방청을 하였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당일, 오전 9시 30분부터 배심원 선정 기일이 진행되었다. 검사와 변호인이 돌아가면서 무작위로 추출된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배심원후보자를 각각 4명까지 무이유부 기피할 수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30조 ① 검사와 변호인은 각자 다음 각 호의 범위 내에서 배심원후보자에 대하여 이유를 제시하지 아니하는 기피신청(이하 "무이유부기피신청"이라 한다)을 할 수 있다.

1. 배심원이 9인인 경우는 5인

2. 배심원이 7인인 경우는 4인

3. 배심원이 5인인 경우는 3인


검사는 '생활고를 겪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나는 '전과자가 재범을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검사는 1명, 나는 2명의 배심원 후보자를 기피하였고, 총 7인의 배심원과 1인의 예비배심원이 선정되었다. 예비배심원은 재판부에서 뽑아놓고, 평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비밀로 하였다가, 평의를 시작할 때 알려준다고 고지하였다.


배심원 선정기일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피고인이 배심원 선정 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배심원 선정 기일이 끝나고, 배심원 후보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잠시 휴정을 하였다가 국민참여재판공판기일이 진행되었다.



배심원 선서, 모두진술, 쟁점정리


국민참여재판공판기일이 시작되면서 배심원들이 선서하였고, 재판장께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피고인의 인적사항에 대한 확인을 하였다.


이후에 검사의 모두진술을 통하여 공소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그 이후에 변호인 모두진술을 통하여 공소사실 인정여부 및 무죄입증계획에 대하여 밝혔다. 이 절차는 검사와 변호인 모두 피피티를 작성해서 진행하였다. 아마도 배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처음으로 재판을 준비하면서 피피티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재판부에서 배심원들에게 쟁점정리를 해주셨고, 증인신문으로 이어졌다.



증인신문


증인신문은 피고인과 내가 부동의한 증거의 작성자인 수사관 2명에 대해서 이루어졌다. 전편에서 썼던 바와 같이 우리 측 신청증인인 고시원 주인은 결국 공판기일에 나타나지 않았고, 당일 증인취소신청을 하였다. 수사관 1명에 대해서는 오전에 신문을 하고, 점심을 먹고 휴정을 하였다가 오후에 남은 1명의 수사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였다.


검사 신청증인이므로 검사가 먼저 신문을 하고, 이후에 내가 신문을 하였다. 내 증인신문의 요지는 1) 피고인의 DNA가 피해품에서 검출이 되지 않았던 점, 2) 1번 범죄발생지와 2번 범죄발생지까지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지 여부, 3) CCTV상으로 피고인이 피해품을 들고가는 것이 확인되는지 등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의 신문 이후에 재판부의 질문도 이어졌었다.


치열한 증인신문이 끝난 후에 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휴정시간동안 증인신문결과가 우리 피고인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판기일이 끝난 이후에 영장실질심사를 하러 갔다가 증인신문을 하였던 수사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수사관님께서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 물어보셨었던 기억이 난다)



서증에 대한 증거조사


휴정을 마치고 서증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루어졌다. 서증에 대한 증거조사는 국민참여재판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증거조사였다.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신청한 증거에 대하여 변호인이 동의 혹은 부동의 여부를 밝히면, 부동의 한 증거에 대해서만 증인신문 등을 통해서 증거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기에 동의한 서증들에 대해서도 수사검사가 증거신청을 한 취지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고, 이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변호인이 이의를 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면서 배심원들에게 증거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였다.


여기서 검사와 치열하게 다투었던 것은 '피해품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증거기록이었다. 나는 상식적으로 피고인이 위 피해품의 자크를 열었었다면 자크 부분에서 DNA가 검출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를 주장하였고, 검찰은 DNA 자체가 검출되지 않은 것과 DNA가 검출되었는데 그 DNA가 피고인의 DNA가 아닌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형사재판을 변호하며 '검사가 왜 이런 것을 증거로 신청하였을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피고인을 위해서 시작했던 국민참여재판이었는데 진행하면서 나 역시 형사재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던 것 같다.



피고인 신문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 신문을 많이 생략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고인 스스로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싶어하기에 피고인 신문을 하였다. 우리가 준비한 피고인 신문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잘 대답을 하였지만, 검찰이 질문한 신문사항들에 대해서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아쉬운 점이 존재하였었다.



검사의 구형과 최후변론


이후에 검사의 구형이 있었다. 검사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하였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며 법정 최저형인 징역 3년을 구형하였다.

나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존재한다면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일반적인 재판에서도 최후변론을 다른 변호사님들보다는 길게 하지만 이날은 20분 가까운 시간동안 최후변론을 한 것 같다. 최후 변론을 하면서 최대한 배심원들과 아이컨택을 하며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최후변론이 끝난 후, 피고인의 최종진술이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끝난 시간은 오후 6시 반이었다. 배심원 평의를 위하여 휴정하였다.



배심원 평의와 평결, 그리고 법원의 선고


재판을 다 마치고 나서 유죄가 인정될 것 같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그래서 배심원 평의도 일찍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먹지 않고 법원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8시가 넘어서도 법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자 '혹시 무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라는 기대를 하게 되기도 하였다. 9시즈음에 재판부에서 배심원 평의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고, 빨리 법원으로 돌아갔다.


법원에서 피고인과 함께 재판부와 배심원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고인에게 "최선을 다하였지만 결론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이 좋지 않으면 항소를 꼭 해보세요."라고 이야기하였다. 피고인은 "변호사님, 이번에는 정말로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었는데... 제가 하지 않았는데 제가 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저는 앞으로 잘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결론은 유죄였고, 검사의 구형대로 형이 선고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을 마치고


이 사건을 위해서 구치소에 10번 이상 방문하여 피고인을 접견하였었고, 직접 범죄발생지에도 방문해보고, 당일에도 12시간을 넘는 시간을 법원에 있는 등의  노력을 하였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한동안 마음이 안좋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피고인이 이러한 노력을 알아주고, 억울해하는 마음이 풀렸었다면 그러한 노력이 아깝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형사변호사로서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부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여 피고인을 위해 변호할 수 있는 변호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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