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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Apr 17. 2018

법과 현실 그 사이.

# 지난 주 토요일에 영장실질심사 국선변호인으로서 4건의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하였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와 접견 후,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변론을 하고, 필요하다면 추후 의견서를 제출한다. 1년 넘게 하고 있고, 8일에 한 번씩 담당이 돌아오기 때문에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큰 느낌없이 영장실질심사를 하러 법원에 갔었다.


# 처음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감금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를 만났다. 영장청구서를 보고, 피의자에게 모두 인정하냐고 물어보았다. 피의자는 "인정합니다. 다만..."이라고 말을 이었다. 그 '다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구청에서 하청을 준 업체로부터 공사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루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난 후, 업체에서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일 동안 계속 돈을 달라고 하였으나, 8일 째에는 업체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일째 되는 날, 원청인 구청 건설과를 찾아갔습니다. 저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구청 공무원이 하청업체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하청업체에서 확인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 같았고, 구청 공무원을 알았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하였고, 오전 내내 실랑이 한 결과 구청 공무원은 다시 전화를 하였고, 다음 주까지 지급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제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저는 점심을 먹기 위해 구청 밖으로 나왔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제 수중에 2,200원 밖에 없었습니다. 핫바를 먹을까하다가 화도 나고 그래서 소주를 사서 나왔습니다. 구청 벤치에 앉아서 소주를 먹는데 하청업체에서 제가 받기로 한 OO만원 중 OO만원만 입금하였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순간 화가 났고,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구청 건설과로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고, 이성을 잃은 저는 건설과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남은 소주를 먹은 다음에 소주병을 탁자에 깨뜨려 제 목에 대고 죽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시설과장이라는 사람과 면담을 하였고, 그 도중에 남은 O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가 경과된 후, 경찰들이 와서 체포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의 마음은 너무 먹먹해졌다.


# 두 번째 피의자는 특가법(절도)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피의자에게 혐의사실을 인정하냐고 물어보니 모두 인정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고자 이번 범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하였다. 내가 왜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고자 하였는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지난 징역을 마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교도소에서 나올 때, 제가 받을 수 있었던 금액은 5만원 뿐이었습니다. 5만원 만으로는 가족이 없는 제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시 교도소에 가고자 절도를 하였습니다.'


이에 내가 '특가법에 적용되는 상습절도는 징역 3년이 최저형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피의자는 '밖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처벌받는 기간 동안 다리를 잘 치료하고 나와서 이후에는 새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번에는 먹먹한 수준을 넘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 세 번째 피의자는 주거침입, 강간미수, 폭행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피의자에게 혐의를 인정하냐고 물어보니, 주거침입과 폭행은 인정은 하지만 강간미수는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여자친구였는데,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폭행을 할 때에는 먼저 폭행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남자가 여자로부터 폭행을 당하더라도 얼마나 심했겠냐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지만 최근 친한 지인이 부인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고통받다가 이혼을 하게된 사정을 보았었기에 피의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았다. 피의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피의자의 행동들은 피해자의 폭력적인 성향으로부터 일어났고, 어떤 혐의는 피의자가 하지 않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 나머지 한 건은 보이스피싱이었다. 


# 4명의 피의자에게 모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난 1심까지 이들을 위해 국선변호를 하게 되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 이들이 유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분명히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다.


# 그렇지만 '과연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에 이날 나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던 것 같다. 과연 법은 국민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기에 난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명하고, 형벌의 존재목적인 사회교화를 생각해서 이들이 최대한 법이 허용하는 관대한 처분을 받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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