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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Apr 10. 2020

두유와 보람


오랜만에 사건이야기에 관한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법무법인 설립, 사무실 이전, 사건 처리 등으로 인해서 너무 바빠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종종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남기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254조(미수범) 전4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대한민국 형법에서는 살인죄에 대해서 가장 강하게 처벌을 하고 있고, '미수(살인에 나아갔으나 실패한 경우)'도 강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살인죄는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정도에 따라 사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는 무거운 범죄이고, 미수라 할지라도 6~9년 정도의 징역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구속영장실질심사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어서 이번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알고 있는 사이였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 술을 먹으러 가서 술을 먹다가 갑자기 소주병을 깨서 피해자를 찌른 사건이었습니다. '살인미수'라는 혐의가 주는 부담감이 너무 막막하였지만 그래도 범행자체는 시인하기에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낮다고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중대한 범죄'였기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피고인을 구치소로 찾아가서 소통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피고인은 조울증을 앓고 있고, 그로 인해 다른 가족들은 피고인을 포기하고 오로지 할머니만이 피고인을 도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할머니와도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의 할머니께서 사무실을 몇 차례 찾아오셨었는데 오실 때마다 두유를 사서 오셨습니다. 무거운 두유를 집에서부터 들고 오시기에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 드렸지만 계속해서 들고 오셨습니다.


피고인은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깨진 소주병으로 찌를 때에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었다고 이야기하였고, 수사기관에서도 그렇게 진술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부인하는 것은 어렵고, '양형'에 관해 선처를 구하는 방법을 쓰리고 하였습니다.


피고인과 이야기한 결과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할머니와 협조하여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합의서 및 처벌불원서를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했고, 피해자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였다는 점, 피고인이 119에 신고하여 피해자를 치료받게 한 점,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고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점, 피고인이 이제까지 단 한번도 형사처벌전과가 없는 점 등을 강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재판을 준비하여 진행하였고, 다행히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을 선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결이 선고된 몇 일 뒤에 피고인의 할머니께서 두유를 사들고 사무실에 찾아오셔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제가 한 것보다 할머니께서 손주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손자가 가정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라고 이야기드렸습니다. 부디 피고인이 잘 치료받아서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두유를 볼 때마다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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