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곱빼기, 들기름 막국수

by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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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는 편이다. 매일 먹는 음식이 닭가슴살, 현미밥, 고구마 정도로 정해져 있다 보니, 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 사라졌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식에 대한 식탐이 없는 편 정도랄까. 그런 내가 최근(혹은 지금까지도) 식탐을 내며 즐기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들기름 막국수'다.


이름마저 생소한 '들기름 막국수'를 처음 마주한 곳은 분당의 한 식당이었다. 거래처 미팅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가던 길에 팀장님은 내게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들기름 막국수 먹어봤어요?"

"네? 처음 듣는데요?"

팀장님은 내 대답을 듣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나를 근처 한 식당으로 데려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앞에 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얼마간의 기다림 후에 자리에 앉아 메뉴를 쳐다봤다. 대표 메뉴라고 적힌 들기름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가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물막국수가 땡겼지만, 팀장님은 평소와 다르게 내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지도 않고 들기름 막국수 2개와 녹두전을 주문했다. 팀장님은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식은 빠르게 세팅됐다. 깔끔한 담음새의 메밀면 위로 김가루와 참기름, 새싹이 얹혀 있었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검은 면발 위에 다채로운 색의 새싹이 올라가 있어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테이블 한편에 적힌 대로 겨자 같은 다른 소스는 일체 뿌리지 않은 채 면을 이리저리 섞었다. 다 섞어진 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입에 가져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메밀면이 입에 들어감과 동시에 입맛을 돋우었다. 곧 차가운 메밀면 식감 뒤로 들기름의 고소함이 입안 전체로 퍼졌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들기름을 신선한 새싹이 잡아줬다. 고소함과 상쾌함의 완벽한 밸런스. 팀장님이 자신 있어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음식은 분명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 베스트 5안에 들것이다.


이후 들기름 막국수는 거래처를 방문할 때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들기름 막국수의 원조라는 고기리에 위치한 식당에도 몇 번 도전해봤지만, 갈 때마다 있는 어마어마한 대기줄에 번번이 실패했다. 대신 주말이면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들기름 막국수 식당을 찾아다녔고, 가까운 마트에서 시판용으로 나온 들기름 막국수를 사서 집에 쟁여두기도 했다. 그만큼 이 음식은 내게 없던 식탐까지 만들어 주는 완벽한 음식이었다.


이제 나는 그때의 팀장님 역할을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나 친구를 데리고 가 의사를 묻지도 않고 들기름 막국수를 주문한다. 처음엔 생소한 표정의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그렇게 또 한 명의 들기름 막국수파를 만들어내면 내 안에선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 왜 음식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위안거리라고 하지 않는가. 우연히 다음 주에도 거래처 미팅이 잡혔다. 팀원 모두 들기름 막국수를 먹기로 이미 합의까지 해둔 상황. 이번 주말은 다행히도 월요병이 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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