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현행 선거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많은 독자가 알고 있는 내용일테지만, 책의 목적처럼 굳이 한 번 더 짚고 시작하려 한다.
현재의 국회의원 수는 300명이다. 이중 253명은 지역구 의원, 나머지 47명은 비례대표 의원이다. 곧 다가오는 총선에서 우리는 2장의 용지를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을 뽑는 용지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찍는 용지. 지역구 의원은 말 그대로 각 지역에서 지역주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을 말하며, 비례대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된 의석수만큼 정당 자체적으로 선정된 국회의원을 말한다.뉴스만 틀면 나오는 패스트트랙이나 선거법 개정에 관한 내용은 바로 이 현행 선거법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선거법 개정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고,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일까.
현행 선거법의 장단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한다면 바로 '사표'다. 지역구 의원의 비율(253석)이 비례대표(47석)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결국 사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노원구에서 A당의 이 모 씨와 B당의 김 모 씨가 후보로 나왔다. 개표 결과 A당의 이 모 씨가 51%, B당의 김 모 씨가 49%로 지역구 의원 당선자는 A당의 이 모 씨였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이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 하나가 보일 것이다.
'나머지 49%의 의견은 어떻게 되는 거지?'
물론 예로 든 것처럼 극적인 사례가 꼭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압도적인 표 차이가 아닌 애매모호한 표 차이로 당선이 된다면 나머지 지역 주민들의 다수 의사는 반영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죽은 표 '사표'가 되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비율에 있다. 253석과 47석은 그 비율이 너무 차이가 나서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인해 현재 선거법 개정에 관해 계속해서 말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선거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
현재 합의되지 않았지만,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총의석수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수를 배분하고, 지역구 의원이 채워지고 남은 숫자에 비례대표를 넣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보자. (편한 계산을 위해 지역구 의석을 100석, 비례대표 의석을 50석이라 하겠다.) A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10명이 당선이 되었고, 정당 득표율은 20%가 나왔다. 현행의 경우 지역구 의원 10석에 더해 비례대표 10석(50석 x 20%) 총 20석을 가져간다.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떠한가. 지역구 의원은 그대로 10석이지만, 비례대표는 정당의 득표율에 연동해서 가져가게 되어있다. 즉, 총 150석 의석수에 정당득표율 20%를 곱한 30석이 A당의 총의석수가 되는 것이고 지역구 의원 10석을 제외한 20석이 비례대표 의석수가 되는 것이다. 준연동형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간다. 연동형 까지는 못하겠으니 말 그대로 반만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연동형에서 비례대표 20석을 받았지만, 그의 반인 10석만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워낙 복잡한 내용이라 헷갈릴 수 있지만, 중요한 내용은 지역구 의원의 수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겠다는 것이다.사표를 줄이고, 민심을 더욱 잘 반영하겠다는 것인데, 왜 정당마다 의견이 다른 것일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고 중요한 이유는 이 개정 선거법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거대 정당에게는 불리하고, 소수정당에게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법이 개정되면 자유한국당의 의석수가 최대 20석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배를 까고 반대할 이유가 있다면 있을 수 있겠다.
사설
'여러분이 이겼습니다. 애국시민 여러분!'
국회에서 규탄집회를 하던 중 황교안 대표가 시위대 앞에 나와 한 말이다. 애국시민은 누구이고, 그렇지 않은 시민은 누구인가. 선거법 개정안과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해 규탄집회에 참석해야만 우리는 애국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기보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드는 이 모습을 우리는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정치적, 사회적 발전을 위한 합의가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이 모습 말이다.
개인마다 정치적 색이 다른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서로의 정치적 이념이 다르니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논쟁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다른 얼굴이다. 하지만 투쟁과 논쟁의 끝에 우리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인가. 사회적 발전을 위한 목적인가.
적어도 우리 모두가 사회적 발전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건강하게 논쟁하고 정쟁하는 날이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