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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Dec 28. 2019

<단편소설> 골목 속 사이렌

소방청 공모전 1차 당선작

작가의 말. 최근 불법주차된 차로 인해 소방차가 화재현장에 진입하지 못하자 시민들이 맨손으로 차량을 옮긴 일이 있었다. 문득 내가 썼던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불법주차와 관련된 내용이 주제로 들어가 있던 터라, 더욱이 해당 사건과 겹쳐 보였다. 아쉽게도 소방청 공모전에서는 1차 통과된 작품이지만, 이렇게라도 소설을 선보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길 바란다.

 

골목 속 사이렌

 생수통을 몇 병이나 비워냈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기침은 어쩔 수 없었다. 불길이 내뿜는 잿빛 연기를 몇 시간이나 들이마신 탓에, 차 안에 탄 모두는 가시라도 걸린 것 마냥 목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그런 동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퇴근길 정체로 인해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얼마나 남았냐?”

“40분 정도 남았습니다.”

동석의 한껏 날 선 질문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하지만, 성훈은 익숙한 듯 대답했다. 말은 무뚝뚝하게 해도, 운전하는 성훈을 위해 애써 하품을 참아가며 눈을 뜨고 버티고 있는 동석이었다. 졸음을 참기 위해 창문을 내리니 이내 선선한 가을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운치 있고, 감성적인 계절이지만, 소방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많이 걸리는 계절이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차는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동석의 팀원들은 책상에 대충 옷을 던져두고는 바로 샤워장으로 향했다. 동석도 이내 샤워장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중,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신입 후배가 쭈뼛쭈뼛 동석을 불러 세웠다.

“저 선배님”

말끝을 흐리더니 곧 한 장의 우편을 동석에게 건넸다. 이내 편지를 뜯은 동석의 눈에 ‘고소장’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때 현장에 나가셨을 때 소방차로 들이받은 차량 차주가 결국 고소를 했더라고요. 소방법 설명하면서 말린다고 말려봤는데 결국..”

“알았다. 가서 일 봐라.”

쭈뼛대는 후배의 말을 끊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이내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날도 오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앞에 있는 차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석은 답답하다는 듯, 무전기를 들어 성훈을 닦달했다.

“야 임마, 왜 안가!”

“여기 문제가 좀 생겼는데요..”

“무슨 문제?”

“그게..”

망설이는 성훈이 답답했는지, 차 문을 열고 성훈이 타고 있는 소방차로 걸음을 옮겼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몰려든 시민들 사이를 뚫고 간 곳에는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꿈쩍도 못하고 있는 소방차가 있었다. 곧 동석을 발견한 성훈이 창문을 내리고 상황을 설명했다.

“불법 주차된 차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들 말로 현장은 여기서 5분만 더 가면 된다고 하는데, 워낙 골목이 좁아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차주는 전화 안 받아?” 

“네 계속 전화 중인데 전혀 받지를 않습니다. 견인차를 부르긴 했는데, 워낙 골목이 좁아서 언제 도착할지 모를 것 같다고..”

소방기본법상 소방차를 막은 주차 차량이 방해가 됐다면 보상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규정일 뿐이었다. 차량이 파손되면 처리 여부나 책임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소방관이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훈이 망설이는 것을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다.

“내려”

“네?”

“내리라고!”

동석은 성훈을 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는 운전석에 앉아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무전에서 팀장인 우식의 목소리가 다급히 들려왔다.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주차된 차와 거리를 벌릴 만큼 벌린 동석은 그대로 주차된 차를 향해 속력을 올렸다. 소방차에 들이 받힌 세단은 힘없이 트렁크를 구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 앞 범퍼가 전봇대와 부딪혀 멈추자 소방차의 오른쪽 바퀴는 서서히 세단 위를 올라타고 막혀있던 골목을 지나갔다. 놀란 시민들은 그저 카메라를 연달아 누를 뿐이었다.

     

 도착한 현장은 고요했다.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는 신고내용과는 다르게 어디에도 불이 붙은 흔적은 없었다. 동석의 머리가 곧 불안감으로 휩싸였다. 곧 무전기 너머로 사무실에 있는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신고자와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장난전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뒤따라 온 우식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야, 다들 짐 챙기라 그래라.”

다행이라는 마음과 허탈함이 공존하는 와중에 현장 한쪽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동석은 남자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성훈에게 다가갔다.

“왜 무슨 일이야.”

“아까 그 차주요. 자기 차 어떻게 할 거냐면서 계속 소란을 피워서요.”

남자는 곧 동석에게로 대상을 바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요? 내 차. 내 차 어떻게 할 거요? 아주 차가 다 찌끄러졌는데,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그러게 왜 불법주차를 해서 소방차가 못 들어가게 하십니까. 거기다 차를 대면 안되죠.”

“뭐? 그래서 불났어? 불났냐고? 내가 여기 20년 넘게 살면서 계속 여기에 차를 댔는데, 아무 문제없었다고. 알아?”

동석은 애써 무시한 채 성훈을 차량으로 복귀시켰다. 동석도 차량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남자가 동석의 팔목을 붙잡았다. 

“어딜 그냥 가. 너 내가 고소할 거야. 고소해서, 내 차 다 보상받을 테니까 그리 알아. 알았어?”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석도 참지 못하고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대응했다.

“고소하세요. 할 거면 하시고, 지금 바쁘니까 저리 좀 가세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도 잠시 언성을 배로 높이고는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식은 다급히 동석을 차로 보내고, 남자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1시간이 넘는 소동 후에 겨우 복귀할 수 있었다.     


 이미 소주 두 병을 비운 동석의 앞에 우식이 앉았다. 그런 우식에게 동석은 아무 말도 없이 술을 건넸다.

“겨우 온다는 데가 또 여기냐.”

“얼마나 좋냐. 현장 끝나면 항상 여기서 술 한잔해줘야 하는 법이야.”

동석은 아까 받은 고소장은 이미 기억에 없는 듯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고소는 걱정하지 마라. 별일 없을 거야. 혹시나 책임져야 되면, 애들이 보태기로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동석은 잔에 담긴 소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 잔에 소주를 따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돈 때문에 그런 줄 아냐? 도대체 내가 뭘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이야. 밤낮 바뀌며 살아도, 주말에 애들이랑 놀이공원 한 번 같이 못 가줬어도 내가 사람 살리는 거, 그거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근데 저거 봐라.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장난전화는 기본이고, 사람 살리러 갔다가 이 새끼 저 새끼 쌍욕 듣는 거, 난 이제 못하겠다.”

“못하겠다니 무슨 말이야.”

“이제 사표 쓰련다.”

동석은 우식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안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봉투 하나를 건넸다. 사직서였다.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는 우식에게 기어코 사직서를 쥐여주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문으로 향했다.

“오늘은 네가 사라. 퇴직 기념으로”

말을 마친 동석이 가게 문을 나가 홀연히 사라졌다. 동석을 잡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우식이었기에, 그저 자리에 남긴 소주를 연신 들이켤 뿐이었다.     


 오랜만에 주말 아침이 시끄러웠다. 놀이공원 갈 생각에 애들은 이미 아내를 재촉하고 있었다. 아내 역시, 아이들의 옷가지를 챙기며 바쁜 모습이었다. 정신없어 보였지만,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 아내 역시 신이 난 듯했다.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고작 주말 하루를 나갔다 오는 것에 이렇게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껏 자신이 어떤 아빠였는지 알 수 있었다.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주머니 깊은 곳에서 전화가 울렸다. 우식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표정이 금세 실망감으로 번졌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근처 화재 신고에 부랴부랴 출동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잠시 망설이다 거절 버튼과 함께 전원을 꺼버렸다. 동석은 오늘만큼은 가족들과 보내리라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 듯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사람이 많은 놀이공원을 아이들과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행복해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밖으로 나와 꺼져있던 전화기의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걸려있었다. 모두 우식에게서 온 것이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제발 아니길. 별일 아니길 바라며 서둘러 우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연결음 끝에 우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다 동석아. 화재가 번져서 아직도 진압을 못하고 있어.”

불안한 예상은 언제나 맞아떨어졌다. 1시간 전에 시작된 불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다친 사람은 없고?”

“안에 남은 사람이 있다고는 하는데, 확인을 못했어. 그렇다고 당장 들어갈 수도 없어.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다.”

“금방 갈게.”

말을 마친 동석의 눈앞에 즐거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돌려 현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걸려 도착한 현장은 어느 정도 불길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에 타고 있는 집은 당장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꺼냈어?”

“진입할 수가 없어. 이미 지붕 한쪽도 무너져 내려서 애들 들여보낼 수가 없다.”

“불은 왜 이렇게 크게 났는데?”

“스프링클러랑 제연시설이 없는 건물이라고 하더라고. 건축비 아끼려고 그랬다는데, 초기 화재를 전혀 진압을 못했어.”

동석은 재빨리 장비를 착용했다. 낡을 대로 낡은 방화복과 산소통을 메고 건물로 진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놀란 우식이 재빨리 동석을 가로막았다. 

“미쳤어? 지금 들어가면 너도 죽을지 몰라. 안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동석은 우식을 거칠게 밀치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불길은 거셌다. 외부의 불은 어느 정도 진화되었으나, 내부의 불은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이리저리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전소되어버린 1층을 보니, 화재가 1층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향했다. 아직 생존자가 있다면, 위층에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위층 역시 불길이 거셌지만, 아직 완전히 타버린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사무실 문을 여기저기 열어 생존자를 확인했다. 넓은 건물에 여러 사무실이 밀집한 구조여서 생존자를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수색했지만, 어디에서도 생존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무전기 너머로 우식의 음성이 들려왔다.

“야 빨리 나와. 지금 무너질 것 같아. 지붕이 거의 내려앉았어.”

“지금 나간다.”
서둘러 계단으로 향하던 동석의 눈에 반쯤 열린 창고 문이 보였다. 서둘러 나가야 했지만, 이내 창고로 향했다. 이미 연기가 자욱한 방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이미 의식은 없는 상태. 서둘러 코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연기를 마신다면,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 동석은 자신의 호흡기를 벗어 남자에게 씌운 후 자신의 어깨 위로 남자를 들춰멨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지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지붕은 동석과 남자의 바로 앞으로 떨어지며, 출구를 가로막았다. 불길이 다시 한번 거세게 올랐다. 당황한 동석이 남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서둘러 창문으로 향했다. 2층이었지만, 그리 높지 않은 건물이었다. 줄을 연결해서 내려간다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는 높이였다. 문제는 의식이 없는 남자였다. 재빨리 무전기를 켰다.

“생존자 찾았다. 2층 창문으로 들것 좀 올려보네!”

동석의 말에 우식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는 곧 동석이 있는 창문으로 팀원들과 향했다. 동석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호흡기가 없었다.

“야, 너 호흡기는 어딨어!”

동석은 들리지 않는 듯, 다시 모습을 감췄다. 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완강기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대로 옆에 있던 담요를 찢어 줄을 만들었다. 성인 남자의 무게를 버티지는 못할 테지만, 올라오는 들것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곧 창문 밖으로 천을 던졌다. 밑에 있던 성훈과 우식이 들것을 묶어 줄을 세게 2번 당겼다.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받은 동석이 들것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순간 머리가 핑 돌며 잡은 끈을 놓쳤다.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일 것이다.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자신 또한 위험할 수 있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다시 끈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들것 위에 구조용 로프가 함께 있었다. 서둘러 들것 위에 남자를 옮겼다. 남자와 산소통을 함께 단단히 고정시키고, 로프를 책상에 묶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남자를 창밖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밑에서도 혹시 모를 2차 사고에 대비해 추락방지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들것과 산소통을 멘 남자의 무게를 동석 혼자 버티는 것은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손은 부들대기 시작했고, 감은 줄 역시 팽팽하게 조여졌다. 하지만 다행히 곧 무전기 너머로 생존자가 내려왔다는 우식이 음성이 들려왔다. 안도의 숨을 쉴 틈도 없이 서둘러 줄을 올려 자신의 허리에 감쌌다. 그리고는 창문을 넘어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식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나머지 지붕이 줄을 고정했던 책상 위로 무너졌다. 한쪽이 부서지며 가벼워진 책상이 곧 창문으로 날아왔다.‘쿵’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틀에 책상이 강하게 박혔다. 동석이 묶여있던 줄 역시 크게 요동치며, 동석을 벽에 강하게 때렸다. 곧 동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외벽에 머리를 맞은 탓에 의식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책상이 창문 사이로 빠지며, 1층으로 추락할 것이다. 동석 스스로 줄을 끊고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동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점차 창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곧 책상다리가 부러지며 줄과 함께 동석이 1층으로 떨어뜨렸다. 좋지 않았다. 다리로 착지했다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테지만, 몸이 늘어진 상태로 추락했기에, 위험한 상황이었다. 뇌진탕, 심각하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었다. 우식이 동석의 의식을 확인했지만, 이미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가늘게 쉬고 있는 숨소리만이 동석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구급차 어딨어! 빨리 실어!”

남자와 동석이 곧 구급차에 실렸다. 다급하게 응급조치를 하는 구급 대원과 함께 구급차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 주차된 차들로 인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골목에서 10분이 넘도록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도로로 나갈 수 있었다. 불은 모든 것을 다 태우고 그제야 서서히 진화되기 시작했다. 우식은 상황이 나아지자 현장을 성훈에게 넘기고 급히 동석이 실려간 병원으로 향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하얀색 천장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겨우 고개를 돌려 본 곳에는 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보였다. 병원이었다. 자신에게 붙어있는 호흡기를 손으로 떼어낸 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조용한 병실에 TV만 소리 없이 켜져 있었다. 곧,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급히 의사를 불러왔다.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던 의사가 곧 차트에 무엇인가 적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죠?”

“화재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걸 소방관이 구했습니다. 연기를 많이 마시긴 했지만, 당분간 입원 치료하면 별일 없을 거예요.”

의사는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그제야 자신을 구해 준 소방관 생각이 났는지, 남자는 의사에게 소방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소방관은 어떻게 됐나요?”

남자가 소방관에게 물으니 그제야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사는 곧 간호사와 몇 마디 나눈 후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신을 들것에 내려보낸 후 소방관 본인이 1층으로 내려오던 중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때 외벽에 강하게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고 추락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어요. 골든타임만 지켰더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골목에 차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환자 탓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더 안정을 취하세요.”

말을 마친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병실 문을 나섰다. 병실 TV에는 화재현장에 대한 뉴스가 연신 보도되고 있었다. 앵커는 진지한 표정으로 화재 현장에 관해 보도하고 있었다.     

“서울의 한 건물에서 불이나, 소방관 1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건물에는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스프링클러와 제연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초기 화재진압이 되지 않았으며, 근처 소방서에서 급히 출동했으나, 골목에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진입이 어려워 화재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소방당국은 발표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불법 주차된 차량 파손에 대한 명확한 책임 기준이 없어 소방법 개정과 불법주차에 대한 처벌 강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TV를 보며 남자는 줄곧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실의 적막을 깬 것은 남자의 핸드폰이었다. 이내 남자가 핸드폰을 집고 문자를 확인했다.      

<고소장 접수 완료. 00년 00월 00일까지 출석 요망>     

남자는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남자의 눈에서 떨어졌다.


                                                                                                                                  사진출처. MBC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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