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세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자랑거리다.
두 살까지 한마디도 안 해서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 보라고 했었다.
한국과 일본을 석 달에 한 번씩 번갈아 살았는데
두 살이 지나니 갑자기 아이가 말문을 열고 두 나라의 단어를 구분했다.
한국에서는 사과를 일본에서는 링고를 달라고 한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 한국인 친구들의 영어 수준은 월등히 좋았지만
내 아이들이 영어를 못해 영어보다는 소통이 가능한 한국말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말 실력이 속도를 내 손색없는 한국인이 되었다.
그러던 그 친구들과의 대화도 이제는 거의 영어가 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언어를 쓰는 아이들의 생각은 뿌듯하게 생각하는 나와 달랐다.
세 개의 언어를 이렇게 자유롭게 쓰고 있지만 깊이가 없다고 한다.
하나의 언어만으로 살았더라면 더 표현이 섬세하게 되었을 거라고 한다.
이런 문제는 생각하지 못해서 아찔 했다.
아직도 아이들이 언어로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어로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를
아이들은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학 때 일본어로 번역되어 다시 한글로 번역된 독일 작가 책을 읽으며
원작을 그대로 읽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내 아이들은 이런 미련은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두 아이들은 언어가 스펙이 되지 않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든다.
일하는 곳에서 생긴 일인가 본데 궁금하다고 하니 세 개의 언어를 섞어서 설명을 한다.
전공의 전문적인 단어는 그대로 영어이고
감정을 살리려고 쓰는 의성어와 의태어는 일본어로
문장은 한국어로 연결해 완성시켰다.
나름 나를 위해서 배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