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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Dec 01. 2018

완벽해진 아들

중년의 자식 자랑

어릴 적에는 말수가 정말 없어 주변의 어른들이 곰 띠라고 했다.

싫다 좋다는 표현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나 원하지 않는 것에서

원하는 것이면 하고 아니면 그냥 묵묵히 왜 그런 걸 하냐는 표정이었는데

음식도 좋아하는 것은 몰두해서 먹으면서 싫은 것은 말도 없이 입을 닫았다.

다 같이 몰려다니면서 노는 일보다 누워서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그림책이나 만화도 자기 손으로 열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두나라를 너무 데리고 다니면서 안정감을 주지 못했었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엉성한 것이 다 내 탓 같아 조금만 잘해도 무조건 감탄하게 되었는데

책가방 안에 넣었다는 숙제로 받은 종이가 구겨져 맨 밑에 있으면

생각이 안 나는지 안 보이면 숙제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찾지도 않았고

어쩌다 생각이 나면 그대로 서서 가방 위에 놓고 끄적거리듯이 숙제를 했다.

이 아이가 일본의 그 유명한 여유(ゆとり) 세대가 될뻔한 주인공인데

그 여유 세대를 발표하기 전부터 아들은 만사에 느긋했었다.


구구단은 2학년 2학기 때 시작을 했는데 아들은 이걸 왜 외워야 하냐고 하기에

같은 숫자를 여러 번 더하게 되면 시간도 걸리고 번거로워 쉽게 편하게 하자고

곱셉의 기호를 만들어 이런 표를 만들었다고 설명을 했더니

아들은 이해가 되었는지 씩 웃더니 자긴 쓸 일이 없다고 안 외우겠다고 했다.

그냥 더하면 되는 일인데 그걸 왜 외워야 하냐고 더 복잡하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럼 열심히 9번 더하기를 하라고 했다.


난 1년 동안 담임에게서 구구단을 가르쳐 보내라는 말을 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4학년이 되고 어느 날 아들은 심각한 얼굴로 구구단을 외우겠다고 했다.

전부 더하면 되는 일로 이제까지 잘했는데 그걸 왜 외우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단 수가 올라가서 8단이 되니 더하는 일이 힘들어졌다며 시간도 모자란다고 

결심을 했는지 8단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거의 한 달 만에 전부를 다 외웠었다.

이때 느낀 것이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야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고

그 공부가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아들은 성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저 흥미가 있는 공부를 좋아했는데

다행히 미국에서 하는 공부는 전과목을 다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었다.

결국 배운 암기 과목이 적어서 일반 상식에서 엄청 모자라 걱정을 했는데

대학생이 되어 괴테가 바흐가 누군지 궁금해서 스스로 찾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아이는 대학을 들어가 2년간의 완벽한 성적으로 3학년에 편입을 했는데  

뿔뿔이 흩어진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같은 대학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다들 노력을 해서 다니던 대학보다 조금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에 성공을 해

중학교부터 단짝이었던 친구와 같은 기숙사로 같이 졸업을 했다.

아마도 친구들과의 약속이 아니고 내가 하라고 했다면 가능했을까...


대학 1학년 때 아들은 공부가 어떤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았다며

공부 잘하는 친구 두 명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따라 하고는

이것이 정말 공부인 것 같다고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그 덕분에 완벽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편입을 했는데

학교의 급수가 올라가니 공부가 만만하지 않아 엄청 어렵게 졸업을 했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딸의 말로 편입 전의 대학은 학생을 되도록이면 끌어 주려고 하지만

자기 학교는 안 되는 아이는 그냥 떨어지라고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정말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편입한다고 했을 때 말릴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했었다.


내가 미국을 떠나야 하는데 아이들 둘이 같은 곳에 있으면 내가 안심이 될 것 같아서 

편입에 찬성을 했는데 3학년부터 전공과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은 그 대학의 연구실에 남은 누나의 연구실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했는데

등 뒤로 따가운 눈총을 모두 무시하고 한나절씩 앉아 버티다가 갔다는 딸의 말에 

아들의 머리가 좀 더 좋지 않아 고생이 많은 것이 안쓰러워 아들에게는 한마디도 안했다.

딸은 연구실에서 동생이 저러고 있어서 창피하다고 시험기간이 끝나면 성적을 묻는다며

이 연구실은 총 B가 몇 개인지를 묻는데 뭐라고 대답을 하냐고 했었다.


그래도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며 석사에 도전을 했는데

다니던 연구실의 교수도 합격된 대학 이름을 듣더니 가지 말라고 말릴 수가 없구나 했었다.

석사는 거의 합격이 된다고는 하지만 덕분에 아들은 착각의 세계로 빠지게 되어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위해 원서를 내면서 더 위만 쳐다보게 되었다.


그런 꿈을 꾸는 아들에게 자신을 잘 알라고 말하는데 난 엄청 애를 먹었다.

자식을 끌어내리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자식이 납득을 하지 않는다면 배신자가 되고

박사의 공부는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고 싶지도 않은 곳에 밀어 넣을 수도 없어

아들 스스로 자신의 성적에 자신을 맞추고 납득을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다시 원서를 써야 하는데 

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이번엔 결정을 하겠다고 아들이 먼저 말을 했다. 


적당히 끈기를 가지고 도전도 하면서 적당히 물러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에 아이가 달리 보였다.

사실 이 도전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이대로 계속되면 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걱정했었는데

아들은 자신의 꿈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게 할지 길을 잘 보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을 스스로 잘 조절하고 있으며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어제와 다른 세상의 흐름을 느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주변의 특별한 것에서 자신이 뭘 배워야 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것에서

이 아이가 완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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