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모자람
내 몸은 점점 고물이 되어 간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머리통에는 습진 약을 바르고
무릎에는 파스를 붙이고 벌레에 물린 다리도 챙겨야 하는데
왠지 얼굴에 찍어 바르는 크림보다 더 복잡하게 다양해서
얼굴에 이렇게 신경을 썼다면 십 년은 젊어 보이겠다는 생각에
내 몸은 정말 수습하기가 어렵게 조금씩 삭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만나 같이 며칠을 지냈는데 덤덤한 게 별 느낌이 없다.
이젠 머릿속도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어졌는지
분명 석 달을 뛰어넘어 이곳에 왔는데 이 아파트도 주변도 거리도 그대로다.
아마도 안 좋아진 아이들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그러는지
아이들이 하는 걱정에도 설마 이대로 쭉 이렇지는 않을 거라고 회피한다.
어쩜 생각이나 고민을 하면 더 어려운 현실만 보게 되어 그런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흘러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그저 시간만 보내자는 식으로
오늘이 어제와 같이 지나가는데 요일이라도 느끼면서 살자고 애를 쓴다.
이러니 내 시간이 별로 대수롭지가 않고 그저 남은 시간만 길게 느껴지는데
문뜩 아이들의 인생은 아직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 아이들의 시대는 다들 늦게 시작한다고 하지만...
삶이 길어지니 늦어도 된다고 하지만...
아들에게 나에게 남은 시간을 너희들에게 나눠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꼭 되고 싶은 것도 해 보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길게 남겨진 시간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애써 먹는 것을 줄이고 약을 발라가면서 살아가는데
억지로 메워가는 이런 시간을 아이들은 더 가치 있게 써 줄 것 같았다.
30이 넘은 딸도 30이 되어가는 아들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언제...
그런데도 아직 하고 싶은 공부도 있고 해 보고 싶은 일들이 많다고 하니
이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 보이고 나에겐 그 시간이 있다.
갑자기 한 생각이지만 시간을 정말 물려줄 수 있다면 해 주고 싶은 생각에
그럼 늦게 시작되는 아이들의 삶에 여유가 생겨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나의 남은 시간을 너희들에게 주고 나는 빨리 끝내도 상관이 없는데 하니
아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줄 수는 없지 않냐고 한다.
난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얼마가 남아 있던지 그 남은 것을 다 주면 되는 일이라고 하니
아들이 멀뚱거린다.
그리고 아들이 날 보면서
엄마는 자식이 잘 되어 있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냐고 한다.
난 나의 역할은 자식들이 힘들 때 있어주는 것으로
잘되고 있다면 내가 구태어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아들은 자신이 잘 되어 있는 순간을 내가 봐줬으면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역할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이 나이에 처음 느끼고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