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몰입
오락프로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오삼불고기로 쌈을 싸 먹는 장면이 자면서도 깨어서도 눈에 밟혀
먹고는 싶은데 해질 건지 머리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재료만 사다 놓고 안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인데
먹고 싶다는 나를 믿어 보자고 입맛이 오기를 부리게 만들어
사 온 오징어와 삼겹살을 다듬는데 한 시간 이상을 서 있다가 앉으니
아들이 뭘 했냐고 하기에 오징어를 해체시켰다고 하면서
난 다음 오징어 요리는 한 일 년 정도가 지냐야 해 질 것 같다고 했다.
삼겹살의 기름을 조금은 제거했는데 이런 작업을 마치고 나니
요리의 반은 해결이 된 것 같다고 내일 아침에 야채만 준비하면 된다고
기분 좋게 내일은 쌈을 싸 먹어야지 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일어나 유기농이라고 비싸게 산 상추를 씻으려고 보니 벌레가...
봉지를 열기 전에 봐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대로 냉동실에 넣고는
깻잎은 유기농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고 한 장씩 씻으면서
농약으로 중독이 되어도 벌레를 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사다 놓은 숙주를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같이 볶아 보자고 봉지를 열었더니 하루 사이에 뿌리가 자랐는지
그냥 하면 안 될 것 같아 길게 눈에 뜨이는 것만 자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참을 했는데 잘라 놓은 것을 보니 너무 산뜻한 게 더 욕심이 나서
다 해야 할 것 같아 쉽게 해 보자고 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면서
목적을 위해서 지금 내가 나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랬다.
언제 이걸 다 하게 될 건지 머리가 거부하는데도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는 것에
그것도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따로 임부를 수행하고 있는 것에 나 같지가 않아
이런 나의 도전 정신과 집요한 집념과 끈기에 의문이 생겼다.
왜 이런 집념과 끈기가 공부에는 없었을까 하고...
거의 반을 해 내고 나니 뽀얀 숙주가 엄청 빛나게 보였는데
뿌리를 자르지 않은 것을 보니 왜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듯
그래서 더욱더 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무엇을 하기 위해서 부엌에 섰는지
숙주를 다듬는 것이 전부가 되어 내가 나에게 지루함을 달래는 위로까지 했다.
해 내겠다는 하는 집념에 이러는 내가 엄청 대단해 보였는데
다 마치고 나니 어제 저녁에 오징어를 다듬었던 시간보다 더 길어서
늦은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던 것이 아예 점심이 되었다.
찾아본 여러 방법에서 숙주를 넣어서 볶는다는 것은 없었는데
삼겹살은 볶아 내고 오징어와 야채를 양념장에 버무려 두었다가 볶으니
엄청난 맛 좋은 냄새로 둘을 같이 합하니 제법 푸짐하게 그럴싸했는데
숙주가 아까워서 어떻게든 먹자고 마지막에 넣어 살짝 같이 볶았더니 물이 생겼다.
전문가가 만든 그런 요리는 안되었지만 내가 만든 것으로는 최고인데
시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다시 언제쯤이 되어야 먹게 되려나 한다.
그리고 덕분에 나에게도 일종의 끈기와 집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다른 분야에도 쓸 수 있다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