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깨달음
내 머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난 내 머리 때문에 매번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봤는데...
아들이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나에게 선행 학습을 시키자고 나처럼 아이를 방치하면 안 되다며
원서를 낼 때에도 봐주는 곳이 있으니 이용을 하면 더 유리하다고
꼼짝을 안 하는 나에게 충고에 지쳐서 화를 냈던 엄마들도 있었다.
내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간 내용도 자기 것이어야 꺼내 쓰게 되고
학교의 수준도 아이와 맞아야 졸업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공부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다 아이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방식이 바뀌거나 발전하는 것도 그 아이의 성격과 노력에 달렸고
그건 아이의 것이지 내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난 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들어가기는 쉽다고 졸업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대학에 갈 수 없으면 한국이나 일본의 대학에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니
주변의 엄마들이 다들 그렇게 하면 아이를 망치는 것이라고
미국의 고등학교는 널널한데 그렇게 지내다가 대학도 널널한 곳에서 보내면
아이는 평생 죽도록 공부해 본 기억이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고 했었다.
그래서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건가 했는데...
대신 내 돈의 가치를 할 것 같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학비는 주겠다고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누구의 탓도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공부를 너무 잘해서 탈이 많았던 딸아이도 아닌데 아들이 입학을 한 것이다.
나와 비슷해 보였던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잘 헤쳐나가도록 했더니
머리가 어쩌고 하는 타령을 하지 않고 아이의 장점을 알려 줬더니
아들은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나아지면서 중학교에서 공부의 세계를 접하고
고등학교에서는 그 경쟁에 스스로 끼어 보려고 애를 쓰더니 해 낸 것이다.
내 부모님은 나를 초등학교 3개월을 보내고 다시 유치원에 보냈다고 했는데
그때의 내 머리 수준을 그대로 내가 다 성장하고도 유지하고 계셨는지
아버지 집에서 내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것을 자기 전에 치워야 할 것 같아서
밤에 청소기는 그래서 빗자루를 들고 쓸고 있었는데 정전이 되었다.
다시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자니 거의 마쳐가는 중이어서 아까워
방바닥의 이음새를 기준으로 한 칸씩 쓸면 되겠다고 달빛에 의지해서 했었는데
그걸 보고는 아버지가 캄캄한데 먼지가 보이냐고 하시기에 내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내 일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너도 머리가 있구나 하는 말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들은 말을 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난 스스로 머리가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 말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엄청 머리 좋은 딸이 나에게 따졌었다.
머리만 좋으면 뭐하냐고 뼈도 가늘고 얼굴도 갸름하게 만들어 줬어야 했다고
머리가 가지는 자존심이 외모에서는 없다고 하면서 불평을 늘어놨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는 철이 들었는지 그런 말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들과 나는 둘이서 우리는 그 머리만 있으면 다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하면서
주절거리는 딸을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만든 사람이 나였기에...
그래서 그런 머리가 아닌 아들에게 항상 미안했었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내 머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내 머리도 그냥 잘 써 먹도록 그냥 내 버려두기만 했어도...
난 50이 다 되어서 이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머리가 정말 좋았다면 조금은 더 빨리 깨달았을까...
아쉬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