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수면
날 저녁형 인간으로 태어나게 만든 장본인인 엄마는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 힘들게 되어서 저녁형 인간에 대해 인정을 했는데
세상에는 너처럼 저녁 늦게 자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라라고 하셨다.
철저한 아침 인간이었던 엄마는 엄청 일찍 잠자리에 들고 그래서 새벽이면 일어나는
그 시대에서 가장 모범적이 사람으로 사회가 인정하고 자신도 확실하게 믿었는지
그 정반대인 하나뿐인 엄마의 딸인 나를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하셨다.
나는 저녁이 되어야 머리가 움직이는데 엄마는 자라고 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꼭 이 시간이 되어서 책을 꺼낸다고
아침이면 머리가 멈춰서 몸까지 잠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데
움직이라고 하니 난 칫솔질을 하면서도 먹으면서도 잤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깨어 있을 때의 내 모습은 비몽사몽으로
난 뭘 해도 결국엔 잠이 원인이 되고 그래서 결과가 그 정도라고
그래서 인생의 반을 자면서 버린다는 말을 엄청 많이 들었다.
내 딸은 나처럼 저녁형 인간이지만 심하진 않고
아들은 아침형 인간으로 아마도 누구를 닮았을지...
이 둘의 시간을 서로 어긋나지 않게 서로 배려하도록 많은 애를 썼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았으면 했는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면 스스로 편하게 살 건지 느끼도록 했다.
내가 그저 쓸모없다는 말에 눌려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세상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이 있어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알게 되고 나니
엄마의 기준으로 나를 봤던 엄마의 답답함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아이들보단 못한 운을 가지고 태어나 다행이라고
이해를 받지 못해서 계속 들어온 말들이 나를 지배하고
그 말들에서 벗어나는데 나는 인생의 반을 쏟아부었는데
내 아이들은 인생을 이런데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혼자서 이런 엄마도 있는데 하며 배시시 웃었다.
복이 별건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큰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난 참으로 불행했지만 덕분에 돌아다니면서 사는 것에 자유로웠다.
난 이 개념 없는 저녁형 인간으로 시차적응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한방에 날렸는데
늦게 자도 되는 리듬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냥 도착하면 그곳의 시간에 맞게 살아가는 것에서
다들 시차로 힘들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느껴 본 적이 없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난 아침에는 흐느적거리는 인간으로 변신하고 저녁에는 팔팔하니
이해받지 못했던 것을 이런 데서 보상받는 것 같다.
간혹 아침형 인간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를 기사로 보게 되는데
저녁형 인간이 더 유리한 뭔가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