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조금 더 빨리 맞자고 하니

중년의 백신 접종

by seungmom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딸아이가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에도 막연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내 문제가 되니 이건 약간 살이 떨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예약을 하라고 하는 날 선뜻 전화를 하지 못하면서 뜸을 들였다.


그래도 맞아야 자유를 얻게 되니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백신은 맞아야 하는데 부작용이라는 것에서 생각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부작용이라는 것은 복불복이니 나만 피해 간다는 보장은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나에게 왔을 때에 대한 준비라는 것을 해 두자고 마음먹었다.


난 뭐든 이렇게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준비를 열심히 했던 탓에

10시간 이상의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꼭 최악의 경우를 준비해 두었다.

태평양을 지나니까 반드시 바다에 떨어지고 그럼 죽겠지 하면서

빈 내 집을 치우자고 온 사람들이 기겁하게 되면 내 자존심이 걸린다고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해 두자고 유언장도 써 두고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나는 비행기에 앉아서도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세요 하는 바람보다는

그저 순응하자고 운명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커 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준비와 지금의 준비는 죽는다는 가정에서 같다는 생각에

뭘 해야 하는지 척척 진행이 되어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아다 놓는 것까지

이틀에 다 해 치우고 아이들에게 알리니 아이들이 무표정으로 또 하면서 들었다.


죽지 않고 살아 생활을 해야 한다면 백신은 이 시대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태어나면 예방주사를 맞듯이 이건 나이가 들어도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인데

그게 오래된 역사가 있는 예방주사가 아니어서 조금은 불안하다고들 하니까

꼭 살고 싶다고 매달릴 만한 이유가 별로 없는 나도 조금은 나쁘게 설렜다.


맞아야 하는 거라면 부지런히 맞자고 내 나이가 등록해도 되는 13일이 되어

얼른 보건소에 신청을 하려고 보니 대기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대기자로 해서 벌써 1차를 맞았다는 의사 남편을 둔 친구 말이 떠올라서

보건소에 신청을 하고 가까운 병원에 10일이나 빠른 대기자 등록을 해 뒀다.


27일부터 노쇼로 대기자도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했는데

뉴스에도 내 주변에서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 당연히 내 차례가 올 거라고

그저 늘어놓았던 물건들을 치우고 겨울 옷들을 모두 빨아 넣어 두고

화장지나 비누 등도 여분을 사 두고 3일간 낑낑거릴 준비로 우유도 빵도 샀다.


그래도 이런 준비는 내가 살았을 때의 것으로 혹시나 해서 유언장도 다시 써 두고

딸아이가 비타민을 많이 먹어두라고 해서 약국에 가 비타민을 찾으면서

이 이야기를 하니 약사가 웃으며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26일 내일이면 나도 백신을 맞은 사람이 된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안 오는 잠을 청해서 잤는데

27일 오후가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휴대폰만 괴롭혔다.


27일 저녁 뉴스에 백신을 맞으러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한다.

그전까지 그렇게 많은 뉴스에 화이자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고 하기에 당연히 난 첫날 맞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29일이 되어도 주변의 병원에 잔여백신이 있다는 표시는 뜨지 않고

하루하루가 지나가니 나의 긴장감도 서서히 사라져 이 기다림이 뭔지

집안은 전처럼 되어 있고 우유도 다시 사 와야 할 것 같다.


이러면서 내 나이에 맞게 당당하게 예약한 곳이 조금 먼 보건소였는데

집 바로 옆에 있는 병원에 예약을 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기자라는 단어에 혹해서 빨리 맞고 싶다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했더니

이런 불편한 상황만 만들어 놓고 좀 더 빨리 맞을 거라는 기대도 허무해지니

욕심이 너무 과했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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