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성으로 검색이 되었다.

중년 기적을 봤다.

by seungmom

나는 컴퓨터의 자판으로는 한글을 생각과 동시에 칠 수 있다.

그만큼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말인데

글씨가 독특했던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타자기를 사용했고

그 타자기 두둘이던 실력이 컴퓨터 자판으로 연륜이 더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 쭉 살아왔던 친구들은 나만큼 자판을 두둘이지 못해서

타국에서 친구와 메시지를 할 때마다 친구의 자판 치는 속도가 너무 느려

한글 자판 치는 것을 연습하라며 우쭐거리면서 훈계질을 했었는데

그들은 모두 휴대폰에서 날아가는 손가락의 속도로 나를 가볍게 눌렀다.


천지인 자판인 휴대폰 자판은 미국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건 기적이라며 이런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거냐며

아이들에게 한글이니까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한글에 대해 딱히 가지고 있는 지식도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썰을 풀었다.


그렇게 자랑스럽다고 떠들었던 그 천지인 자판을 막상 내가 쓰려니

그게 엄청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을 하면 더 잘못 치게 되는데

한국 생활이 길어지니 더욱더 필요해지는 천지인 자판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길을 걸어가면서 찾는 상점 이름 하나를 제대로 치지 못하고 관두는데

몇 번을 고쳐 쓰다가 나중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말았다.


그동안 혼자서 깝쭉거리며 컴퓨터 자판을 못 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동안 그 친구는 나에게 휴대폰 자판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았는데...


나는 휴대폰 자판이 갑갑해서 컴퓨터와 휴대폰이 같이 되어 있는

카톡이나 아이폰의 메시지만을 사용하려고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오면

답장은 카톡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은근슬쩍 카톡을 쓰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머리를 굴려가며 한국생활을 했었는데

며칠 전에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운전을 하면서 행선지를 묻더니

한 손으로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하려고 해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니

달랑 초성만 찍어서 저렇게 자꾸 실수를 하시면 힘들 텐데 했더니

그 초성으로 내가 가고자 했던 장소가 나오고 그대로 입력이 되었다.


이런 신천지가 있었구나 하면서 아저씨께 흥분되어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초성으로 검색이 된다고 하셨다.


나만 몰랐었는지 휴대폰 자판에서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들은 그걸 일일이 치려고 했냐며 요즘엔 음성으로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아들은 한글을 거의 음성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걸 알았으면서 비 오는 날 상점을 찾으려고 자판을 두드렸다.


몰라서 쓰지 못했던 것도 알면서도 쓰지 못했던 것도

이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다며 연습을 한다.

초성으로 찾는 방법도 음성으로 찾는 방법도 내 것으로 만들자고

이런 것들이 나이 들어가는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거라고

많이 써 봐야 급한 상황에서도 생각이 날 거라고 휴대폰을 들고...


그러다가 음성으로 초성을 써넣을 수 있다면 하고는...

초성을 생각하는 동안에 그냥 음성이 빠르겠다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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