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얻은 것
세상에 저런 색으로 만든 옷을 누가 사간다고 만들었을까 하며
화려하고 커다란 무늬의 옷을 보고는 패션쇼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요란한 장식이 많은 옷을 보면서는 세탁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팔리지 않으면 디자인한 사람이나 회사는 곤란해질 텐데 하면서
대체 어떤 사람들을 타깃으로 만든 것일까 하는 생각에 걱정을 한다.
나는 당연하게 다들 나와는 다르다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아왔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는 것을 입으로 떠들면서도
같은 연령층이면 물건을 고르는 취향은 다들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물건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저런 물건이 왜 있어야 하는지 하며
개성이 넘치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해 매번 투덜거렸다.
저건 너무 요란해
저건 너무 사치스러워
저건 너무 지구를 사랑하지 않아 하며
온통 부정적인 시선으로 내가 절대로 사지 않으니 그건 낭비라고
모든 것을 내가 중심이 되어서 판단을 했었다.
그저 내가 필요하다고 사는 물건들은 거의 기본에 충실한 것으로
있는 듯 없는 듯 한 그런 것들을 좋아하며 착한 가격이어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
남들도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인정을 했었는지
이젠 나도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았었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내가 편협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내 삶이 바빠서 여유롭게 내 생각에 관심을 두지 못한 탓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가해진 지금은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데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양한 그런 물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다들 같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그러니 당연하다고
눈길도 가지 않았던 물건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이 엄청난 깨달음이 있고 나서는 물건들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어떤 디자인이든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덕분에 칙칙한 나도 화려하고 다양한 것을 보고 즐길 수 있구나 하며
다들 나와 다른 것에 내가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는 이 코로나 시대에서 또 다른 편협한 나를 봤다.
위드 코로나가 된다고 하니 세계 각 나라 사람들이 다들 반겼는데
왜들 저렇게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아서 핑계가 있는 지금 이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
사람들은 집안에 감금되었던 것도 아닌데 왜들 저렇게 야단이지 했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나처럼 나가는 것을 모두 다 싫어한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내가 너무 꼼짝을 안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지 않아도 친구들이 나오라고 작년만 해도 만나자고 했었는데
코로나가 끝나면 하면서 거절을 했더니 올해엔 나오라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도리어 편하게 매일 나를 열심히 분석해 가면서 살 수 있었는데
정말 나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엄청 세상은 무미건조할 것 같다.
남들은 말 그대로 나와 다른 남들이라고 충분하게 알고 살았으면서도
남들이 나와 다른 것을 고르고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서는
남들에게 왜 그렇게 나와 다르냐고 따지지는 않았지만
남들과 같지 않은 내가 기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나를 기준으로 움직였다면 어떨까 하니
그건 색도 없고 웃음도 없을 것 같아 나도 그 세상은 버릴 것 같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었구나 하며 납득을 하면서
서로서로 같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구나 한다.
이제는 화려한 것이나 엄청나게 이해가 안 되는 물건에 대해서도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하면서 이해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미술관도 가고 친구들과 카페에 간다는 말에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니까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라고 납득이 되었다.
나와 다른 남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