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이니까
내 아이들이 일본에서 초등학교(小學校)를 다닐 때 일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약 한 달 정도가 지나면 가정방문이 시작되는데
하루에 여러 집을 다니는 것도 있고 다른 부작용도 있어서 그랬는지
그저 집 앞에 서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간다는 내용의 안내문에는
들어오시라고 권하지도 말고 물 한잔도 내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이러면서 가정방문이라는 것을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찾을 수 없어 긴장이라는 것이 없었다.
일본인 엄마들은 담임으로 어떤 선생님이 좋다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첫아이가 3년의 유치원을 마치고 부산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살던 지역에서 가장 좋다는 학교에 가도록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와 이 초등학교 3학년으로 들어가야 할 때를 대비해
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거쳐 간다는 유치원에서 마지막 1년을 보냈다.
2년간 다녔던 유치원은 그저 건강하게 잘 노는 것이 최고였는데
비싼 유치원 원복에 운동복에 엄청 엄격한 규율이 많은 이 유치원은
한자도 영어도 산수도 가르쳐 3년째 다니던 아이들은 대단했었다.
여기서 내 딸아이는 비상한 머리를 확실하게 증명했었다.
2년이나 다녔던 아이들에게 지지 않고 결국엔 위에 섰는데
이때부터 딸아이는 잘난것이 뭔지를 느끼고 즐겼던 것 같다.
덕분에 2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서
바로 친구들도 생기고 일본 초등학교에 적응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내 아들아이가 있다.
아들은 2년간 해운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유치원에 걸어 다녔는데
일본과 달리 원생이 적어서 엄청 가족 같은 분위기로 나는 좋았다.
헌데 아들은 아직 일본어도 읽지 못했지만 한국어도 못 읽어서
아예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알아듣기는 했는지
먹는 것에서는 싫고 좋은 것을 확실하게 표현한다고 전해 들었다.
이러던 아이가 일본으로 와서 그 비싸고 엄격한 유치원생이 되니
가기 싫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잘 적응하는 편이었는데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유치원 선생님이 무서웠다며
그래서 유치원 쪽으로는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난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되어야 좋을 거라는 그런 관심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을 내가 내 아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그러니 아이가 선생님 성향으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아들처럼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게 만든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 선생님만 보자면 엄청 열정적이고 꼼꼼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딸아이 같은 아이들의 엄마들은 모두 다 칭찬하고 담임이 되길 바랬다.
그러니 1년을 무사히 잘 넘기던지 꿍짝 맞게 자신과 맞아 덕을 많이 보던지
그건 그 아이의 인생에 작은 골짜기나 산을 만들어 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가정방문하는 날 한 아이가 다음다음 집으로 우리 집이 된다고 알렸는데
이 연락 체계가 다음 집을 넘어서 연락하게 되어 있다는 것에 놀랬다.
난 일본에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머리를 숙여야 하는 상대를 만난다고
아이들을 위한다면 그 담임 선생님도 인정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은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서 치우지 않은 집안꼴에 대해서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한 주의문을 탓하니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 선생님의 인상은 내 타입으로 뼈대가 굵어 보이는 중년의 여자 선생님
얼굴의 선도 굵어서 일본인이라기 보단 한국 쪽에 가까워 보였는데
이 선생님은 앉으면서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딸아이가 다친 것에
엄청 굳어진 표정으로 정색을 하면서 그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래서 얼른 말을 잘라서 내가 먼저 설명을 했는데
내 딸이 운동신경이 둔해서 종종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때마다 이렇게 놀래서 사과를 하시면 곤란하다고 하면서
철봉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진 아이는 엉덩이를 찌어야 하는데
턱을 갈았으니 얼마나 순발력이 없는지 알 수 있지 않냐고 하니
그제야 선생님은 처음 인사했을 때의 표정으로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의 일본인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재일교포나 외국인 학생이 있는 반의 담임이 되는 것을 꺼린다고
문화와 정서가 달라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은 일본식인데
그 일본식에 이해가 달라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생각이 되면
곧바로 인종 차별이라고 하고 인권 문제로 커지게 된다며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딸아이가 다친 것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해서 걱정했다고 하면서
담임 선생님은 편해진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해 주니 고맙다고 했다.
나는 터놓고 이야기 한 김에 다 하자고 대 놓고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 이곳에 살고 있으니 이곳의 방식에 최대한 맞추겠다고 하고
그래서 내 아이도 일본 아이들과 같은 선 상에서 같이 대우를 받기 원한다며
때려서라도 고쳐야 하는 일에는 외면하지 말고 그냥 때려도 된다며
외국인이라는 것에 특별이나 차별은 원하지 않으니 똑같이 대해 달라고 했다.
이 담임 선생님과 딸아이는 인연이었는지 3년이나 담임선생님으로 계셨는데
머리가 좋은 딸아이에게 엄청난 관심을 주어서 그 초등학교에서 유명해지고
동생인 아들은 입학하고부터 아들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의 동생으로 불려졌다.
그 당시 학생 중에 일본에서 유명한 야쿠자 집안의 아이들 형제가 다녀
혹시나 하는 걱정은 했지만 상상만큼의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심약한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 자유분방한 행동에 질려 문제를 삼았다.
이런 문제에도 딸아이의 덩치가 일본 아이들보단 월등히 커서 도움이 되고
한국인이 있다는 것까지 신경 쓸 짬은 없었는지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이 담임 선생님과는 미국에서 사는 몇 년간 새해 인사에 소식을 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