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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날로그 문화

중년의 체험담

by seungmom

일본의 아날로그 문화에 이 체험도 속하는 건지 모르지만

뉴스의 제목이 나에게 이 기억을 꺼내도록 했다.


20년 1월 일본에서 떠나는 날이 이틀 후인데 엽서가 왔다.

주택 화재 보험 5년의 기간이 끝난다고 갱신을 하라고 했다.

주택 화재 보험은 집을 살 때 강제로 들어야 하는 보험으로

기본만 들어서 불에 다 타 없어진다고 해도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5년이 지나서 보험금이 줄어들었고 계속해 둬야 하는 거니

갱신할 수 있는 기간에 해 두어야 한다고 들었다.


얼른 전화를 걸어 갱신 기간이 두 달인데 그동안은 미국에 있는다고

혹시나 하면서 두 달이 지나도 갱신이 되냐고 하니 신규가 된다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라 신규로 하려면 엄청 까다로워진다고 하면서

이런 기회에 꼭 갱신을 하라고 제안을 했다.


젊은이의 목소리였는데 꼭 갱신을 하라고 권하는 말에

내가 미국 가는 것을 미루는 것도 빨리 돌아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떠나기 전에 미리 보험료를 지불하겠으니 갱신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며

아직은 갱신되는 보험금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답답했다.

그래서 다시 머리를 써서 지금의 보험 금액을 지불하고 갈 테니

그 돈으로 갱신을 하고 남은 것은 나중에 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그런 짓을 하면 큰일 난다며 절대 안 된다고

젊은이는 무슨 검은돈 거래를 제안받은 것처럼 야단을 떨었다.


한 달쯤 지나야 보험 금액이 확실해진다고 하는데

그 5년간의 화재 보험금은 처음 집을 살 때 5만 엔 조금을 더 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내는 금액은 절대로 5만 엔을 넘지 않는다는 것으로

나는 5만 엔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남는 금액은 버린다는 각오였는데

그 금액을 미리 받아 두고 있는 것에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다.


마지막 수단으로 메일로 금액을 알려 주면 돈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메일 주소를 알려 주겠다며 그렇게 해 줄 수는 있겠냐고 물었다.

우선 서로 메일을 주고받아 잘 되는지 확인을 하고 싶다고 하니

한참 말이 없다가 젊은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듯

미국에서 보내면 미국 돈인데 그건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속 터지는 이 말에 웃음과 짜증이 섞여서 나를 갑갑하게 했는데

이게 마지막이라고 또다시 차분하게 설득이 되도록 설명을 했다.

나는 일본에 통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본 통장에서 송금을 할 거라고

내가 미국에 있어도 지금은 인터넷으로 일본 통장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젊은이에게 또박또박 이야기를 하니 아.. 아.. 하다가 아~~ 하면서

이해가 되었다는 밝은 목소리로 그럼 되겠네요 했다.


우선은 메일이 잘 도착되는지 알아야 하니 내 메일로 보내 달라고

내 메일 주소를 알려 주는데 이게 또 일본이구나 하는 것을 알렸다.

내 발음이 완전한 일본식 영어 발음이 아니어서 전달이 안되어

할 수 없이 알파벳 순서를 들먹이면서 주소를 불러 줘야 했다.


20년 1월 29일 몇 시간 동안 몇 번의 전화를 주고받고

1월 30일 메일도 잘 도착해서 잊지 말고 꼭 연락을 해 달라고 답을 했다.

나는 부산으로 와서 2주일을 지내며 미국으로 가져갈 것들을 사 모아

2월 14일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보험 일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미국 생활을 한 달 반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본에서 메일이 왔다.

제발 잊지 말고 꼭 한 달 후에 연락을 해 달라고 하고는 내가 잊었는지

메일이 왔을 때엔 한참을 어리둥절해서 몇 번을 읽었었다.


3월 30일 보험금이 책정되었다고 연락이 온 건데 그 난리를 친 것과는 달리

미국에 있으니 일본집의 화재보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 이상했다.


메일을 보내줘서 고맙다며 보험금을 보냈으니 확인해 달라고 하니

이번엔 당연하게 척척 알아서 보험증은 집으로 보내겠다고 답이 와

보험증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보험증은 아파트 1층의 우체통으로 보내졌다.

5개월에 한 번씩 일본 집에 들르면 우체통에 우편물이 삐져나왔던 기억으로

1년이 지나 우체통을 비워 달라고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전화로 부탁했었다.

21년 꺼낸 우편물은 일단 보관해 두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1년이나 지났으니

보험증은 기대도 안 하고 보험금 이체한 것만 잘 보관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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