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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pr 29. 2022

청소할 때 돋보기 쓰지 않기

중년이 나이와 하는 타협

떨어져 나간 부품을 찾으려고 돋보기를 쓴 채로 바닥을 쳐다봤더니

그 바닥에는 부품도 있었지만 허연 먼지들도 여기저기에서 나를 자극했다.

조금 전에 걸레질을 나름 열심히 한 나는 보인 먼지를 얼른 닦아 냈는데

그 부분을 닦아내면서 아까는 뭘 어떻게 닦았길래 이렇게 먼지가 남았냐고

나를 탓하면서 고개를 돌렸더니 그 옆에도 먼지가 있었다.


생각 없이 보고만 바닥의 먼지에 할 수 없이 다시 닦기로 작정을 하고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기 시작하니 테이블 다리에도 허연 먼지가 있었다.

그걸 닦고 나니 의자의 다리도 그랬고 가져다 놓은 서랍장에도 먼지가 보여

닦아도 닦아도 보이는 이 먼지를 이러고 계속 닦아야 한다는 것에 질렸다.


잘 닦으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이게 뭔지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고작 부품 하나를 주우려다가 바닥을 보게 된 건데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닦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기분만 남아서 이러는지

조금 전에 닦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걸 감추려고 이렇게 닦는 건지

이젠 팔도 다리도 힘이 들어 관두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보이는 먼지에 겨우 9평이라는 이 공간이 천만다행이라고

이것보다 더 넓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하면서 식식거리면서 닦아 냈다.

하얀 먼지를 위해서 바닥 색을 조금은 엷은 색으로 할걸 그랬나 하면서 

미국 아파트에 깔려 있던 싸구려 카펫은 먼지가 날아다니지 않게 하는데

하면서 청소기 돌릴 때 힘들었던 것은 빼먹고 카펫 생각까지 했다.


난 그러고 한참을 보낸 것 같은데 닦아도 닦아도 보이는 먼지에 지쳐서

언제까지 닦아야 하는지 정신을 차리자고 뭔가 결단을 내리자고 하는데

먼지를 보면서 모른 척하기도 그렇지 않냐고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이다가

그제야 내 얼굴에 돋보기가 아직도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움직이면서 돋보기를 끼고 있으면 어지러워진다고 얼른 벗었는데

마저 닦자고 본 바닥은 너무나 깨끗하게 반질거렸다.


얼굴도 돋보기를 끼고 보면 주름도 더 많이 있고 흰 눈썹도 엄청 보인다.

화장도 하지 않으니 돋보기를 끼고 얼굴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돋보기를 끼고 움직이거나 먼 거리를 보게 되면 울렁거리면서 멀미가 왔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도 바닥도 내 눈으로 보는데

덕분에 아직은 쓸만한 피부라고 깨끗한 바닥이라고 늘 편안했었던 것 같다.


어르신 대열에 막 끼어든 내가 요즘 느끼면서 체험을 한다.

전에는 왜 저렇게 물건을 늘어놓고 쓰시는지 이해가 전혀 안 되었고

구석구석 청소가 안 되는 것도 늘 쓰는 돋보기는 왜 닦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그랬던 나도 돋보기를 끼고 팔팔했던 힘도 빠지게 되면서 나를 위해서

자주 쓰는 물건은 꺼내서 쓰고는 또 쓰게 될 텐데 하면서 그냥 놔두고

청소도 너무 완벽을 고집하면 나만 고달파진다며 타협을 했는데

그러면서 내 생활도 왜 하면서 의문을 가졌던 어르신들과 같이 되었다.


젊은 날의 체력이라면 돋보기를 끼고 청소를 해도 되겠지만

너무 깨끗한 것을 고집하면 그것 또한 나이 들어서 불만만 만든다고

늙지 않는 정신과 늙어 가는 육체가 잘 타협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만족하는 일이 많아질 거라며 돋보기 안 쓰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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