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May 05. 2022

한국에서 살면 한국 음식은 당연히...

중년의 야무진 꿈

한국에서 살면 내 손으로 고슬고슬한 밥에 반찬 세 가지 정도는...


일본에서는 한국 반찬가게나 한국 마트 같은 것이 있어도 거의 구멍가게처럼

그저 한국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팔아 달라고 해서 만든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맛이 약간 일본식이 되어서 많이 달고 덜 매웠는데 엄청 비싸니

어쩌다 특별한 날에나 사다 먹으며 푸짐하지 못한 양에 언제나 아쉬워했었다.


이런 아쉬움에 한국에서도 담가본 적이 없는 김치를 만들어 보자고 덤볐는데

일본 배추로 김치를 만들고 만든 정성이 아까워 김치찌개라도 해 보려 했지만

일본의 야채에는 물이 많다는 것을 물컹한 김치로 그제야 뭔 말인지 알게 되었다.

재일 교포 어르신이 배추를 절이기 전에 햇볕에 말리라고 했었던 것도 같고

소금에 절이면서 배추 위에 무거운 뭔가로 눌러 주라고 했던 것도 같았는데

결론은 처음 만들어 본 김치 맛이 한국의 김치 맛은 아니어서 나도 먹지 못했다.


일본 생활을 하면서 한국이었다면 한국의 재료로 만들어 엄청 맛이 좋을 텐데

하면서 내 요리 솜씨보다는 물컹한 야채 탓을 많이 했었다.


미국에서 살면서는 반찬가게도 많았고 맛도 일본보다는 한국식이어서 좋았다.

어쩌다 경상도나 전라도 맛의 반찬가게를 찾게 되면 엄청나게 사 들고 왔는데

달걀 하나를 사려고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했으니 한인 마트는 더 멀어서

거의 2주일에 한번 꼴로 가서 장을 봐 미리미리 많이 사 들고 와야 했다.


미국에서는 일본보다 열심히 해 먹었는데 그래서 솜씨도 많이 늘었었다.

그런데 제대로 구색을 맞춰서 잘해 보려고 해도 뭔가 하나씩 빠진 것이 있어

한국이었다면 바로 나가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다 쓸 수 있으니

모양도 맛도 확실한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국이 아닌 것을 탓했다.


미리미리 사다 놓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김치찌개 같은 것은 상관없는데

생채 무침 같은 것을 해 먹자고 사 온 야채는 사 온 며칠만 해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많이 터득한 것은 집에 있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법인데

빨리 물러지는 오이가 없어지면 오래 보관이 되었던 사과로 대신하는 식으로

집에 있는 감자가 적으면 감자 샐러드에 달걀을 더 많이 넣어 만들었고

된장찌개에도 두부가 없다고 신고를 하면서 만들어야 했었다.


이렇게 해 먹는 일에 자유가 없어서 한국에 살면 바로바로 마트에 가면 되고

한국의 마트에는 뭐든 다 있을 거니까 난 뭐든 다 해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리하는데 필요한 재료가 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쉽게 살 수 있으니

당연하게 음식도 맛있게 만들어 먹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한국에 와서 살아보니 내손으로 해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에서는 내 입에 맞는 한국식 맛을 내는 한식 식당이 거의 없었고

미국은 맛있는 한식 식당은 많았지만 너무 멀어 쉽게 가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해 먹는다는 생각을 전제에 깔고 생각을 해 왔는데

한국에 와 보니 친절한 배달에 가격도 이 정도면 인정이 되는 선이어서

구태여 일일이 재료를 사서 다듬어 만들어 먹자는 생각이 사라졌다.

내 입맛에도 맛있는 음식을 간단히 주문할 수 있는데 

뭐하러 성공 확률이 반도 안 되는 모험을 하냐는 판단이었다.


처음엔 코로나로 집에서 조용하게 지내야 한다고 배달을 했는데

어쩌다 마트에 가서 많은 제철의 신선한 채소들을 보고는

미국에서 계속 아쉬워했던 것이 떠올라 나도 내 손으로 해 보자고 덤볐다.

그랬더니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만든 요리는 먹는데 30분도 안 걸리고

그렇다고 다양하게 이것저것 만든 것도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는데

치우자고 보니 그러지 않아도 좁은 싱크대가 한가득이어서 질리게 했다.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만들지도 못했지만 그런 음식을 먹었더라도

먹은 좋은 느낌 후에 한가득의 부엌을 치워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다 그 재료들은 적어도 4인 가족은 먹을 것 같은 그런 양인데

그것을 사면 반 이상이 남아서 잊히고 시들어서 나중엔 버리게 되었다.

한 번은 김치찌개는 잘 상하지 않으니까 하면서 한 번에 다 만들어 뒀더니

몇 주가 지나도 줄지가 않아 그 냄비는 엄청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다.

이 경험으로 나는 다시 일을  벌이는 것을 하지 않는 쪽으로 선택하고 

남아 있는 것들을 모두 썰어서 볶아 얼려 두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한국에서 살면 내 손으로 고슬고슬한 밥에 반찬 세 가지 정도의 상을 차릴 거라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지 않아서 한국 음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년식이나 꾹 눌러살아 보니 꼭 한국에 살지 않아 못했던 것은 아니라고

해 먹는다는 것에는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닌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완전한 환상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만 살면 한국식으로 야무지게 내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서

폼을 잡고 즐길 수가 있을 거라...







매거진의 이전글 청소할 때 돋보기 쓰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