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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Feb 24. 2022

축제 같았던 재래시장

정월 대보름 전날

정월 대 보름은 미국에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챙겼던 명절이어서

내가 한국에 있으니 제대로 느껴야 하지 않냐고 머리를 굴렸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서 정월 대보름을 보내는 것은 두 번째인데

작년에는 정월 대보름에 뭘 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아서

올해는 제대로 해 보자며 오곡밥에 나물을 사려고 집을 나섰다.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아 보여 내 기분은 약간 들떴는데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여기는 다른 세상으로 축제를 하고 있었다.


미국 LA에 있는 한인마트는 꽤나 큰 규모로 된 것이 몇 개나 있어

이런 명절에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파는 물건에 신경 써주었는데

그런 모든 것이 어설프게 진짜 같은 기분이 안 들어서 씁쓸했었다.

무엇이 기준이 되어 이런 허전함이나 어설프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지

타국에서 열심히 설날을 추석을 준비했지만 진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타향살이의 설음 같은 것이 아닐까...

엄청나게 많이 한국 것과 미국의 야채와 과일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그 속에서 내 나라의 명절을 찾으려니 어수선해 보이면서 안쓰러웠다.

분명하게 아닌 것이 확실한데 그저 기분만이라도 느끼라고 해 놓은 것이

평소에는 몰랐던 허전함이 여기가 타국이구나 하는 것을 알려줬다.


이런 기억이 한국에서 꾹 눌러 2년을 보낸 지금 이 시장 앞에서 떠오르니

2년간 뭘 하면서 지냈냐고 답답하게 산 나를 내가 원망하고 싶어졌다.

눈앞에는 넘치도록 풍성하고 생기에 즐겁다는 표정들이 가득한 사람들에

이것이 정말 진짜 한국의 명절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느꼈던 허전함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표현은 할 수 없었지만

이 시장은 그저 느껴지는 기분으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답을 찾았다.


난 꾹 눌러 산 2년 동안 설날에도 추석에도 근처의 마트에서 먹을 것을 샀었다.

재래시장이 조금은 더 먼 곳에 있어서 그랬고 뭐든 한 번에 파는 양이 많아 

혼자 먹어 치우기가 힘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안 가게 되었는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운명처럼 재래시장을 떠올렸다.


정말 재래시장은 활기차고 풍성했다.

그러면서 난 왜 이제야 재래시장을 제대로 보는 것인지 후회를 했다.

처음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때는 여러 번 왔었는데 

난 이번이 처음으로 시장에 온 사람처럼 신기하게 발견한 것이 많았다.

그러면서 왜 마트에만 갔었을까 하며 직접 갈아주는 마늘에

고소한 냄새로 기어이 사게 만들어 버린 참기름 한 병을 들고서는

아이들 생각까지 하며 진짜로 진짜 국산 참기름을 먹는구나 했다.


오곡밥도 팔았다는데 내가 너무 늦게 가서 다 팔렸다며

잡곡 5가지를 주면서 지어먹으라며 설명을 해 주었다.

전도 종류대로 있고 나물도 8가지를 예쁘게 담아 팔았고

소고기 뭇국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떡도 팔았다.

분비는 사람 틈 사이로 맛있어 보여서 남들이 사니까 나도 하면서

생각 없이 막 사서 들고는 갑자기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부피는 별로 없지만 무게는 엄청나 두 개의 에코백에 나눠 들고는

더는 욕심을 내지 말자고 더 사서 먹고 싶다는 것을 참아 냈다.


양손에 같은 무게의 에코백을 들고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올 때는 가볍게 신나게 와서 이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몰랐는데

에코백을 든 양손의 무게가 돌아가는 길을 엄청 멀게 만들어 버렸다. 

걷다가 벤치가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쉬면서 용쓰는 것을 피했지만

집에 도착하니 맛있는 것을 샀다는 기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약간 질퍽하게 많은 누룽지를 만들어 버린 오곡밥에 

8가지 나물에 무웃국으로 먹고 땅콩도 까서 먹으며 뿌듯하게 지냈는데

오후가 되어 의자에서 일어나려니 허리가 뻐근한 게 잘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점점 허리는 더 아파오면서 나를 공포 속으로 보냈는데

이러다가 이대로 굽어진 허리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내가 뭘 했다고 아프냐고 생각을 해 봤더니 어제 일이 떠올랐다.


이틀간은 이러다 정말 병원이라는 곳을 가게 되나 걱정을 했는데

파스를 붙이고 허리에 좋다는 운동을 살살 해 가면서 달랬더니

3일째 되는 날부터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허리를 펴면서 냈던 신음소리도 안 나오고 아픔이라는 것이 덜했다.


이 나이라서 허리가 삐끗했지만 이 나이에도 자력으로 나아서

아직은 체력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것 같아 뿌듯해졌는데

이번 정월 대보름을 위해 재래시장에 갔던 일은 이런저런 일로

명절날이면 떠오르는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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