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구나 하며
기대치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아닌 것에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도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나를 막 무시해도 그럴 수 있지 한다.
지금의 나는.
난 이래서 편안하게 사는 것 같다.
날개쭉지에 파스를 애써서 붙이는데 엉망이 되었지만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도 효과는 있겠지였다.
엄청나게 달라진 나의 성격에는 나도 깜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유연했었는지 둥글둥글해진 것에 신기한데
언제부터였는지 노력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생각을 하며
그렇게 마음먹은 것에 고마워하는 나를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 편해지라고 그러는 건지 많이 달라졌다.
세상에 대한 것이나 가족에 대한 것에서 뒷걸음치고는
없는 듯이 지냈던 나를 이제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면서
남은 시간을 잘 지내보자고 미안했던 마음에 속삭인다.
나의 노후는 편할 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언제부터 이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신통방통하다.
그리고 보면 뭐든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다.
청소를 하다가 지쳐서 얼렁뚱땅 끝 마무리를 대충 하면서도
아예 청소를 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깨끗하니까 하고
운동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하다가도 그래도 걷는데 하며
마음 불편한 것을 피하자고 얼른 생각을 돌려 버린다.
이대로 늙어간다면 속을 만들어 긁을 일은 적겠지 한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애를 써서 한 것도 아닌데
작은 결과에 과대평가의 이유를 찾으려 머리를 쓰고는
눈속임 같은 마음을 돌려세우는 것에 내가 멋져 보이는지
뿌듯하게 내가 여유 있어 보인다고 스스로를 즐긴다.
난 움직이는 만큼의 대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매일 하던 영어 단어 공부에 내 발음이 좋아졌다고
혼자서 평가를 하고 이러다가 말문이 뜨이겠지 하면서
더 열심히 하면 그날이 빨리 올까 하다가 그건 아니라고
나의 끈기와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내가 아는 나에게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토닥인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생각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나를 한정 짓는 말들에 나도 나를 무시했는데
많은 자립을 하고 나니 나에게도 나만의 재능이 있다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몰랐던 내가 하나둘씩 튀어나와 나를 놀래게 만든다.
그저 막연하게 구속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온다고 믿었는데
나이가 다른 구속을 하면서 생각만큼의 자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용기만 내면 가능한 일이 어마어마 해 졌다.
이제까지 잘 살아온 나에게도 고마워한다.
덕분에 나는 어디서든 떳떳하게 나를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어디도 무엇에도 기대거나 회피하지 않고 견뎌냈고
그렇게 이 시간까지 잘 와 준 것에 나는 자랑스럽다.
이렇게 극찬을 하는 이런 것도 달라진 내가 봐서 그런 거지
이 나이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나를 들들 볶고 있을 건데
매서운 세상의 잣대로 보면 하찮을 지도 모르는 나에게
나를 이런 생각으로 바라보게 만든 것도 복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499번째의 글이 된다.
그동안 나답지 않게 정말 무던했구나 하는 것에
다음 500번째의 글은 작은 케이크를 사다 놓고 쓰려고 한다.
마음껏 축하를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