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3년을 살았더니
2023년 2월 고베 집에 저녁 9시에 도착하고
꼭 3년을 그냥 비워둔 집의 현관을 열면서
나는 이 집을 왜 샀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다.
애착도 없는 것 같은 이 집의 현관을 열어 놓고는
그 밤에 방마다 있는 창문들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환풍기는 모두 틀어 놓고
물이 있는 곳에는 모두 물을 틀어서 말라버린 하수구를 채웠다.
특히 세탁기의 하수구는 냄새가 심해서 많은 물을 부었는데
석 달에 한번 들려 현관문을 열어도 냄새가 났는데 지금은 3년이니
그래서 나는 내 침을 삼키지 못하고 자꾸 뱉어야 했다.
벌레가 날라 올까 봐 불도 켜 놓지 못한 채로 문들을 열어 놓고
거의 한 시간을 떨면서 냄새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데
산 중턱에 있는 이 아파트에 산바람 같은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
내 겨울 바지를 뚫고 다니니 살이 떨려서 울고 싶었다.
부산에서 내가 매년 겨울에 입던 바지를 입고 온 것인데
난 더위를 타는 사람이고 어떤 건물이든 들어가면 따뜻하니
바로 땀이 나서 이 정도의 바지가 딱 적당했는데...
그런데 일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산바람이 알려주고
난 현관문과 창문을 닫고 불을 켜면서 거미줄에 죽은 벌레를 보며
얼른 엄청 두꺼운 이 집안에서 입고 지냈던 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보니 이런 두툼한 바지를 집안에서 입고 지냈었다.
두꺼운 양말에 두툼한 조끼까지 끼어 입고는 청소기를 돌렸는데
천장과 벽까지 모두 뭔지 모르는 검은 뭔가를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이 청소기는 비상 상황이 생기는 며칠간 계속 들고 있어야 했는데
물건을 건드리면 뭔가가 나타나는데 그게 겁이 나서 청소기를 끼고
3년이라는 시간을 침도 삼키지 못하면서 돌려놓으려 애를 썼다.
10일이 지나니 냄새가 빠졌는지 내 코가 적응을 한 건지
어느 정도 살만해지니 그만큼 움직임이 적어서 인지 추위가 왔다.
이 집안에 바람이 스며들어 춥다는 것은 떨면서 살았으니 당연했는데
그게 외풍이라는 것은 이번 한국에서 살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외풍이 창문이 많은 이 집 곳곳에서 불고 있다고 하니
안 그래도 춥다 춥다를 연발하며 지냈던 전보다 지금이 더 추웠다.
얼른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청소를...
그러니까 왜 벌레들은 모여서 죽은 것인지...
닦아 내야 하는 일이 많아서 결국엔 손가락 끝이 아려오고
허리도 어깨도 쑤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엔 이 집이 어느 정도 살만해서
이러다가 탈이 난다고 손가락 끝이 나아지면 하자고 일을 멈췄다.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이고 쓰러져 자고 일어나고 할 때엔 몰랐는데
앉아만 있었더니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기는데 손이 시려워지고
이 두꺼운 바지에도 앉아 있는 무릎이 시려서 뭔가를 덮어야 했다.
결국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발가락까지 모두 감쌌는데
그렇다고 자판 위로 부는 바람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전에는 이런 집에서 스토브 하나로 방 하나만 데워서 살았는데
그땐 추위가 당연하니 잘 견디면 지나간다고 일본인들이 하듯이
나도 그렇게 껴입고 스토브 하나에 이 추위를 버텼는데
지금의 나는 이 외풍도 바닥의 찬공기도 너무 심하게 느낀다.
그래서 겁도 없이 인간답게 살자며 에어컨을 틀어 놨는데
그저 시리다는 추위가 조금 나아지는 정도로 따뜻하지는 않다.
이런 외풍으로 자고 일어나면 이불 윗부분이 축축하다.
전기담요를 깔아 놓고 이불을 데우는데도 아침이면 습기로 눅눅하니
자는 동안에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도 무시할 수 없는데
어깨가 시려 조끼도 입고 자면서 간혹 코가 시려서 깰 때도 있다.
부산에서 따뜻하게 살아서 더 그런 건지...
나는 에어컨을 틀어 놓고 지내면서도 따뜻한 뭔가가 생각나면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냄비가 식을 때까지 두 손을 녹이는데
냄비를 붙잡고 있다가 그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 얼마나 따뜻한지
그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가 저절로 내 입에서 나왔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손을 씻을 때인데 이번에 와서는 온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그동안에 흘려버려는 물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지근한 물이 되면 비누질을 하고 점점 따뜻해지는 물로
손은 씻는다기보다는 손을 녹이는데 그게 엄청 따뜻하니 좋았다.
오~ 하는 소리가 그냥 나오는 그런 따뜻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이걸 한번 맛보고는 계속 이렇게 손을 씻는다.
일본인들이 자기 전에 탕 속에서 몸을 벌겋게 데우는데
얼굴에서 김이 났던 그 모습이 이제는 나도 알 것 같았다.
일본 집에서 몸을 녹이는 방법은 더운물 밖에 없다는 것에서
그래서 목욕이라는 것을 매일 전 가족이 하는 것에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것은 일본에 쭉 20년 이상을 살았을 때엔 모르고
부산에서 3년을 살다오니 느끼고 이해가 되었다는 것이...
진짜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추운 것도 더 느끼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