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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May 15. 2023

노트북 수리를 부탁하고

태블릿으로 대신하면서

부산을 떠나기 전부터 노트북 자판에 이상이 생겼었다.

키보드 맨 위에 있는 불빛이 어떤 때엔 꺼져버리고 어떤 때엔 깜박거렸는데

멀쩡한 날이 더 많아서 그저 안경 닦는 것으로 눈이 부신 그 부분을 가리거나

조금은 불편하지만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용을 했었다.


그런 노트북을 들고 고베에 갔는데 불빛이 강해지고 빈도수가 더 심해지더니

강한 빛이 멀미가 날 정도로 깜박여서 노트북을 여는 자체가 거북했다.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수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아들에게 물으니

애플케어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애플케어(AppleCare)는 애플 제품의 보증 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이다.


난 이 새 노트북이 벌써 3년이 되어 간다는 것에 엄청 놀랬다.

전에 쓰던 노트북이 부풀어 통통해졌지만 정말 다른 것은 멀쩡했는데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5년 만에 새것으로 바꿨다.


그게 벌써 3년이 되어 간다고 하는 말에 진짜인지 확인을 했다.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왜 난 겨우 1년 정도로 생각하는지

애플케어의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급해져 얼른 예약을 했다.


고베역에 내려서 유명한 관광지 하버랜드에 있는 BIC Apple에 가서

내 노트북이 왜 이러는지 설명을 하니 보겠다며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리니 생뚱맞게 내가 잘못해서 만든 고장은 아니라고 하는데

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던 탓에 잠시 멍했었다.

애플케어의 기긴이 남아 있다는 것과 자판 전체를 바꾸게 된다고 하더니

빨라야 5일 정도 걸리게 된다고 해 다시 나는 뒷퉁수를 맞은 것 같았다.


미국에서 자판을 바꾸는 일은 서너 시간 다른 상점을 구경하고 오면 다 되어서

공식 매장이 있는 여기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부산이나 비슷했다.

부산에서도 노트북을 서울로 보내야 해서 며칠이 걸린다고 했었는데 

노트북 없이 며칠을 지내야 하는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던 나는 망설였다.

그래서 더 큰 매장이 있다는 오사카에 가면 다를까 하고 전화를 해 보니

거기도 노트북의 자판 같은 커다란 부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했었다.


대답을 기다리며 서 있는 직원의 곤란한 얼굴을 보고는

이때까지 여러 가지 검사도 했으니 이참에 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그냥 부탁을 하고 

빈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머리를 굴렸다.

당장 900일 넘게 매일 하던 영어 공부도 있고 매일 봐야 하는 드라마도 있어서

그걸 어떻게 해 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을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한심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안일하게 집안에서 편하게 살았던 탓인지

갑자기 닥친 이 시련이 나를 많이 불안하게 만들어 우왕좌왕했는데

아들이 태블릿으로 하라고 힌트를 주고 나는 전에 쓰던 자판이 생각나서 꺼냈다.

산 지 얼마 안 되는 iPadmini 6세대를 오래전 iPad에 맞춰서 산 자판에 붙이니

미니의 화면이 너무 작아서 업데이트도 안 되는 오래된 iPad Air 2를 쓰기로 하고

노트북처럼은 아니지만 거의 그 방식으로 설치해 두니 왠지 멋져 보였다.












변화가 없던 머리가 엄청 움직였는지 이런 새로운 느낌은 오랜만이라고

버스에서 한심해했던 내가 멋져 보이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커다란 불편이 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건가 하면서

달라진 것들이 나를 깨우는구나 했는데 그 달라짐에 충전 방식은 예외인지

충전하는 선이 다 달라 한번에 안된다고 고민하니 아들은 하나씩 하라고 했다.

그 말에 난 왜 노트북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었는지

달라졌다고 해결했다고 좋아하면서 생각은 그대로였다는 것에서

내가 많이 굳어져 융통성 없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이 되어서는 완전 적응을 했는지 이렇게 쓰는 것도 괜찮구나 하고

잘 적응이 되어 4일이 되던 날 수리가 다 되었다고 찾으러 오라고 했는데 

왠지 벌써 하는 생각을 하고는 이런 경험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섭섭했다.


자판을 바꿨다고 보여주는데 정말 산뜻한 새 자판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자판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같은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며

이 자판은 배터리가 같이 붙어 있어서 배터리도 새것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애플케어로 해결이 되어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하며 보여준 종이에

내가 낸 애플케어 금액의 두 배가 되는 금액이 들었다고 되어 있었다.

매번 노트북을 살 때마다 애플케어도 같이 샀는데 매번 배터리 문제가 생기고

그 비용을 애플케어가 대신해 주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3년이 되어간다고 하는 노트북은 1년 정도 쓴 것 같은 내 기분만큼

정말 깨끗하게 유지가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자판마저 새것이 되고 나니

난 이 자판을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유물로 남길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는 몰라도...

휴대용 자판에 익숙해졌으니 노트북의 자판은 고이 모셔두기로 했는데

먼지를 피하면서 뜨거운 열은 빠져나갈 수 있으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내가 머리를 써서 찾아낸 가장 좋은 것은 부엌에서 쓰는 랩이었다.

투명하고 부피가 없어서 자판만 가리는 것으로 딱이었는데

조금은 궁상맞아 보이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나는 만족이 되었다.


잠이 많이 오던 날 노트북을 끄고 꾹 닫았는데

다음날 노트북을 열었더니 검은 화면에 허연줄무늬가 생겨 얼마나 놀랬는지

원인을 한참 찾아 헤맸더니 자판 위의 랩이 구겨진 채로 먼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 위로 노트북의 뚜껑이 닫혀서 화면에 눌려진 것이었다. 

보호하자고 했더니 이런 사고가 생기는구나 하면서 열심히 닦아내고는

아이들도 이런 착오를 겪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세히 상황을 알려줬더니

한심하다는 얼굴로 랩을 씌우겠다는 발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난 지금도 랩을 씌워 놓고 휴대용 자판을 쓴다.

아마도 새 자판이 새것으로 보일 때까지는 이대로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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