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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n 25. 2023

머리숱이 많았던 삶

나이들이 가지는 풍요로움

그냥 잘 지내던 친구가 요즘 들어 자꾸 내 머리를 탐낸다.

이 친구는 머리숱이 적다고 하더니 이젠 없다고 하면서

머리숱이 많아 보이는데 정말 많으냐면서 부럽다고 한다.


이 친구는 여자답게 가는 몸매에 나보다 작은 얼굴에

머리도 항상 가냘파서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모습이어서 전체가 다 잘 어울린다고 느껴었다.


그런 친구가 점점 짧게 머리를 자르더니 염색도 했다.

이게 다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머리밑이 보여 그런다는데

코로나 시간을 건너서 몇 년 만에 만나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는데 머리숱 걱정을 늘어놨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보여서

머리를 기르면 어떠냐고 하니 그럼 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머리숱이 많아서 머리를 감으면 말리는데

반나절 정도를 허비해야 하는 나에게 좋겠다고 했다.


머리숱이 많아서 내가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어릴 적에는 까만색에 엄청 많은 머리숱에 모양을 내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지 않는지에 집중했다.


조금 신경을 쓴다는 것이 땋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묶었는데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댕기머리로는 최고라는 말도 들었다.

전학을 자주 다닌 국민학교 시절에는 엄청 놀림을 받았는데

말 꼬랑지 같다던지 시골 머슴 머리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숱이 적은 아이가 머리를 땋으면 그 자체로 아름다웠는데

머리숱이 많은 나는 뭘 해도 푸석거리는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나도 파마라는 것을 해 보고 싶어 감행했더니

그게 있던 머리숱이 한 3배는 늘어난 모양으로 부풀어 올라

기껏 한 파마를 여러 개의 고무줄로 묶어서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많은 머리숱으로 좋은 추억이 별로 없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 부럽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숱이 적으면 단발도 긴 머리도 예뻐 보여서 부러웠는데

그게 이제는 반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걸까...

한창 젊은 나이에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과

나이 들어 별 생각이 없이 살아도 될 때 걱정할 일이 없는 것과

어느 쪽이든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이니 어느 쪽이 좋은 건지...


머리숱이 많아서 여름이 오면 머리가 잘 마르지 않아 고생하고

항상 머리를 묶어야 하니 머리밑이 아파서 머리를 잘랐더니

많은 머리숱이 이번엔 붕떠서 사자머리 같다는 말을 들었다.

미장원에 가면 머리 자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숱을 쳐 달라고

많이 쳐 달라고 더 해 줄 수는 없냐고 애원하듯이 부탁하는데

그래서 잘라진 머리카락보다 숱을 치면서 나온 머리카락이 더 많다.


그렇게 숱을 줄이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행복한 일이었다니

세상 사는 일이라는 것이 그저 한쪽만 좋은 것은 없나 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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