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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02. 2023

배고프면 생각나는 비빔국수

공복의 편안함

끼니를 뭔가에 바빠서 챙기지 못하고 있을 때 가장 머리가 맑다.

그런데 난 이런 시간을 별로 가지지 못한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다는 생각을 엄청하는데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바쁠 때엔 배고프다는 생각이 안 난다.

이렇게 경우에 따라 배고프다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정말 배고프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절실하게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무조건 배가 고프다.


일단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비빔국수가 먼저 생각난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비빔국수가 떠오르고 나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면서 김치찌개나 청국장이 생각나

머릿속에는 온통 먹는 것으로 다른 것은 떠오르지가 않는다.


비빔국수는 누가 만들었는지 나에게는 만능인 음식이다.

배가 고파도 생각나고 배가 덜 고파도 잘 먹어지는데

어떤 야채를 넣어도 남아 있던 과일까지 넣어도 되지만

고급스럽게 먹자고 삶은 달걀을 넣으면 국수를 많이 먹지 못해

가능한 달걀은 삼가는 대신 사과와 단무지는 꼭 넣어서 비빈다.

나에게 국수의 양이라는 것은 없어 무조건 많이 삶는데

그러니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 차가운 면을 그대로

남아 있던 야채에 사과로 비벼 먹으면서도 꿀맛이라고 좋아한다.


이 정도이니 항상 배 고플 때를 기다리다가 먹어 치우지만

나도 모르게 끼니를 거르게 되어 속이 비어있을 때를 기억해 보면

공복이 얼마나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는지 많은 일을 해 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면서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문제는

내가 먹는 것을 물리 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내가 스스로 공복 상태가 되기는 힘드는데

절실하게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일생에 얼마나 많은 건지

부모님의 집을 정리할 때 같은 경우가 아니면 없는데

나를 위한 일이 되면 난 무조건 먹는 것이 우선이 되어서

꼭 먹어야 하는 것으로 먹고 보자는 식이 되어 버린다.


이러니 난 살이 통통하게 쪄서 눈살을 찌푸리게는 하지 않지만

옷맵시는 포기해야 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하면서도 엄청 예민한 위장을 가지고 있는지

급하게 먹거나 많이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난다.

그걸 알면서도 먹는 것에는 양보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인데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고서는 고작 그걸 먹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먹겠다는 먹어야 한다고 내가 나에게 야단범석을 떤다.


극기! 가 필요한 때가 이때이다.

먹고 싶다고 한 만큼 먹는 것에 급해져 생각 없이 많이 먹고

그럼 한두 시간은 부글거리는 뱃속을 달래야 하는데

신경성인 만큼 내가 차분하게 나를 안심시키면 가라앉지만

그 시간 동안은 그저 동영상이나 보던지 포켓몬을 하는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는 영어 공부나 글을 쓰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이런 시간이 무사히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걸 두 번 반복하면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아이들과 살 때엔 아이들의 일에 나의 배고픔이 뒷전이 되었는데

이렇게 한가해지니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먹어야 산다는 것은 확실한데 먹고 꺼지기를 기다리고 다시 먹는

이런 삶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불편하다.


아마도 한국 땅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

좋아하는 매운맛이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사 먹기가 힘들 때엔

아예 먹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허기만 면하는 식으로 살았다가

부산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먹는 것이 가능하니 이렇게 된 것 같다.


타국에서 살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행복한 고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먹을 만큼 먹어 봤으니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꾹 참고 이 글을 완성했으니 보상으로 비빔국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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