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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21. 2023

물건을 소중하게 모시려면

다시 하고픈 자랑질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있으면 좋겠다고

내 생일 선물이라며 나를 위해서 내가 샀다.


선이 없는 이어폰과 아이패드에 쓰는 펜슬을 곁에 두고

멋진 곡을 좋은 음질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쓰는데

에어컨 소리에 환풍기 소리가 약간 이명이 있는 내 귀를

나도 모르게 고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처방으로도 쓴다.


나는 귀에 꽉 맞지 않아 더 좋아하는 선이 있는 이어폰을 주로 써

간혹 쓰는 선 없는 이어폰의 케이스는 책상 위에서 많이 쉰다.

그렇다고 천덕꾸러기는 아니고 비싸기도 해서 모셔두는 것인데

드라마를 보다가 뭔가를 해야 하면 이어폰을 바꿔 끼고 일어난다.


아이패드를 8년 만에 새것으로 사면서 펜슬도 같이 주문을 했다.

한 번은 꼭 사서 써 봤으면 했던 것이어서 과감하게 샀는데

받으면서 가졌던 감격보다는 쓰는 일은 정말 없어 부담이 되었다.

그 부담감은 잘 유지를 시키는 것으로 회피하려고 했는지

책상 위에 놔두면서 티슈나 안경 닦는 것으로 말아 두었다.


하얀 깨끗한 표면이 작은 상처로 낡아 보이는 게 싫은데

안경 닦을 때 불편하고 미끄러워 잘 삐져나와 보람이 없어서

뭔가 제대로 된 주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헝겊으로 주머니를 만들면... 하는 생각을 해 봤는데

그것만큼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는

집에 있던 실을 보고 간단하게 우선 긁히는 상처만은 피하자고

가장 쉬운 코바늘로 땜빵질 같이 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엔 이어폰 케이스에 꼭 맞게 열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열리는 부분을 잡아주는 단추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그럼 그 부분이 튀어나오게 되어 그것 때문에 상처가 날 것 같아

나도 편하고 이어폰 케이스에도 좋은 쪽으로 하자고 만들었더니

그게 생각보다 너무 귀엽고 손에도 감촉이 좋았다.


하는 김에 펜슬도 그저 책상 위를 바로 굴러 다니지 않게 하자고

편한 방법으로 떴더니 생각보다 엄청 잘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래서 당장 딸에게 자랑을 하면서 하나 떠 줄까 하니 해 달라며

가능하다면 오렌지 색이나 하늘색으로 해 달라고 했다.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짠 것을 주문까지 받으니 흥이 났는데

이런 건 자랑을 해야 한다고 사진을 다양하게 찍어 두고는

집에는 그런 색 실이 없어서 당장 나가 사 오면서 색만 챙겼더니

실이 가늘었고 신경 써서 짜야한다는 생각에 시간이 더 걸렸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잡은 코바늘이 생각대로 잘 되어서

꼭 필요한 것은 이렇게 바로 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떠오르고 한 시간에 완성이 되는 것을 몇 달을 고민했는데

이번 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살게 될 것 같다.


책상 위에 두툼한 갑옷을 입은 것 같은 펜슬과 이어폰케이스는

다른 것들과 섞여 있는데도 걱정이 안 되니 마음이 편한데

또 물건을 쓰지 않고 모셔두는 꼴이 되나 싶다.

전에 오랜만에 내 집에 들러서 사는 꼴이 답답하다던 친구가

쓰려고 산 물건을 소중하게 잘 모셔 두었네 라며 한소리 했었다.


딸아이가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아들에게도 물었는데

아들은 손때도 묻고 상처도 생겨야 쓰는 맛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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