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만에 온 미국 집
내 집이 아닌 것 같다.
딸도 월세를 반 내고 살고 있으니 정말 내 집은 아닌데
3개월 만에 한 번씩 이곳에 왔을 때엔 어제까지 살았던 기분이더니
3년 반이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시간이었는지 집이 낯설다.
허리가 불편해서 이참에 푹 쉬자고 4일째 먹고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는 궁금하지도 않아 집안이 어떤지 신경 쓰이지 않다가
조금 살만해지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집안을 둘러봤는데
소소한 작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3년 반 만에 온 이 아파트가 낯설다고 딸 집에 온 것 같다고 하니
딸아이는 얼른 엄마집이야 했다.
이 아파트는 아들과 같이 3명이 거의 10년을 살다가 이사한 곳으로
약 10년간 아이들이 초등부터 고등까지 다니면서 불린 추억의 물건들을
추리고 추려서 아이들 둘이서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 주고 나는 떠났다.
그때부터 나는 3개월마다 90일씩 들려서 잘 먹고살게 해 주었는데
3개월의 공백이 있어도 바로 적응해서 집안을 치우고 밥 해 먹고 했던 것이
이번엔 엄청 낯설고 생소하고 건드리면 안 될 거 같은 남의 집같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셋이서 지낼 때의 물건들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뭔가 필요하면 그게 어디에 있었는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3년 반에 이렇게 싹 까먹을 수가 있는 것인지 전자레인지 쓰는 것도 버벅거렸다.
3년 반이나 딸 혼자서 살았으니 이렇게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지
난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가졌던 살림살이가 이랬었나 하며 둘러보니
3년 반 전의 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는지 황당한 것까지 아직 있었다.
이런 것들까지 놔두고 같이 살았던 딸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는데
그래도 불평 없이 잘 살고 있는 딸이 정말 살림꾼이 다 된 듯이 움직여
혼자서 살게 된 것이 좋은 기회였구나 하면서 이제는 안 와도 되나 한다.
아들이 뉴욕으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다시 같이 살게 되겠지 하면서
어느 것도 버리거나 줄이지 않고 그대로 이 아파트를 유지시켰는데
그게 확실하게 아니라고 결정이 나니 딸의 거처도 작은 곳으로 옮겨서
온전히 딸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월세도 다 지불하게 하려고 했었다.
그랬던 계획이 허리를 다쳐서 해야지 했던 마음이 쪼그라들어 버렸고
아들 말이 이번 학기에 가고 싶은 연구실이 정해지면 쉴 수가 없다면서
선배들이 이번 겨울방학이 마지막 방학이라고 신나게 즐기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거의 한 달이 되는 방학에는 LA 아파트에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집안의 짐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허리 때문에 심했는데
지금은 아들이 부산으로 떠나기 전 집 모습 그대로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이 아파트는 나보다 딸과 아들의 공간이었고 아들은 부산으로 가야 해서
아들에게 이 아파트를 다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빈둥거린다.
아들이 떠날 때 딸아이가 열쇠를 안 가지고 집을 나서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현관문을 열면서 보라고 써 둔 것을 딸아이는 비닐커버를 해 두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혼자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메모지를 치우지 못하고
3년 반을 지냈구나 하니 살아낸 것이 아니고 버틴 것 같이 느껴졌다.
딸아이는 자기 전에 현관과 베란다로 통하는 큰 창을 확인하는데
내가 같이 있는데도 매일 하는 이 행동에서도 혼자가 힘들기는 한 것 같았다.
아들과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딸이 혼자만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하면
그동안 복작거렸으니 넓은 그 공간을 혼자서 즐기라고 했는데
홀가분해지는 기분은 잠시였는지 내가 와 있어 좋다는 말을 틈만 나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