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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다음이라는 것이 생겼다.

마음이 풍족해진 것 같다.

by seungmom

이 계절에 다시 이곳으로 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하면서

한국의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무화과에 욕심을 부렸었다.

다음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는지 듬뿍 사놓고 먹었는데

맛을 느끼기보다는 미련을 떨면서 아쉬움에 먹었던 것이

이번에는 적당히 사다 놓고 먹으면서도 안달하지 않는다.

이러다 무화과의 시간이 끝나면 어쩌나 했던 조바심이

언제부터 나에게서 사라졌는지 이번엔 맛을 즐기고 있다.


나에게는 다음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이었다면 멋진 일이지만

시간을 조금 더 늘려 볼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다음이 없었고

그래서 마음도 삭막해서 여유라는 것을 몰랐었다.


내 나라에서 살았던 시절에도 나에게는 기댈 구석이 없어서

뭐든 이번으로 다음이라는 기회라는 것은 없었던 것 같았고

나라 밖에서 살았을 때엔 더 치열해서 항상 이게 마지막이라고

뭘 하든 최선은 다했지만 기대도 미련도 만들지 말자고 했었다.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시간을 잘라 버리는 기술은 늘어나

어찌해 볼 상황이 지나간 일에는 내 것이 아니라고 포기를 하고

조금이라도 노력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하는 시간에는

머리를 쥐어짜면서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가져 보려고 했다.


결국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조용하게 지내야 했고

그래서 내일이라는 기대보다는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해서

다음이라는 꿈을 꾸는 일은 나에게서 점점 사라져 버렸다.

일본이 나에게 포근하지 않았지만 나도 일본이 그냥 싫어서

모든 일이 더 힘들지 않았나 한다.


미국에서는 더욱더 다음이라는 것은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는 자격 문제가 불확실해서

떠날 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다음 학기에 대한 준비도 없었는데

그래서 매번 이번 학년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 눈치를 살피며 충격을 덜 받도록 궁리를 했었다.


그래서 생활도 내 나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다음이 없는 미국의 생활이라는 것을 진하게 느껴야 한다고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생활은 다르다고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자고 덤비며

기억에 새겨야 하는 추억거리도 만들자고 애를 썼다.


그런 삶이 나에게 인이 박혀버렸나 아직도 그러고 살았는지

나는 다음이라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점도 있는데 기대라는 것을 해 볼 수 없어서 그랬는지

뭐든 내 힘으로 가능한 것만 하면서 그것만은 최선을 다했는데

내 능력치보다 더 버거운 일들을 해서 그랬는지 힘에 부쳐서

다시 한번 더 나에게 같은 기회를 준다고 해도 고맙지가 않다.


난 나를 다 태우면서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다음이 있다는 생각도 없이 살아왔었고 노력을 했는데

그래서 다시 한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으며 해 볼 자신도 없다.


지내던 곳을 떠날 때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게 될 경우

그러니까 내가 다시는 올 수 없어서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할 때

그럴 때까지 생각을 하면서 청소를 해야 한다고 야단을 떨었다.

그냥 완벽한 청소가 아니고 철저함에 내 삶의 체면까지 더해서

떠나기 전날까지 시간에 쫓기면서 숨이 차게 했었다.


그랬던 생활에 다음이란 것이 생긴 것이다.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하는 청소는 속도가 붙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곳만 닦고 다음에 와서 다른 곳을 해 주면 된다고

아무 느낌 없이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부담이 확 줄어 여유가 생겼다.

왜 그러는지 다음에 또 온다는 것을 노력하지 않아도 떠올렸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구나 하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봄에 잠깐 볼 수 있는 벚꽃을 보면서도 매번 안달을 했었는데

햇 대추를 먹을 수 있는 기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는데

다음에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다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것이었는지

해야 하는 뭔가에 억눌리게 되면 다음이라는 것에 내려놓는다.

해야 할 것들에 눌리지 않고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쫓기는 기분도 미안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은 시간을 내가 쓰고 싶은데로 쓰면서 살고 있다.


다음이라는 것에서 든든함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간혹 생각을 한다.

이 나이에서 이걸 느끼는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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