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에서 종합병원으로
나이가 엄청 많아 보이는 안과 의사는 프로 의사였다.
내부는 내일모레면 안과를 접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에
80년대쯤에 개업을 하고는 그냥 그대로 인듯한 물건들이
의사 가운에서도 보여서 왠지 친근하니 편안했다.
나 같은 환자가 많이 있었는지 시력 검사를 하더니
눈은 좋다며 작은 불빛을 비추면서 보라고 하는데
오른쪽 밑으로 왼쪽 위로 방향을 바꿔가면서
이중으로 보이는 정도를 이야기하라고 했다.
이렇게 정말 10분도 안 되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
종합 병원에 가 보라며 신경에 관한 것 같다고 하며
이중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 제각각이라고 하면서
이건 노안의 난시가 아니고 복시인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니
소견서가 필요하냐고 묻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신경이 문제면 죽는 일이냐고 눈이 안 보이냐고
이대로 그냥 살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큰일이 없으면 이중으로 보이는 그대로 살겠지 했다.
재외국민이어서 보험이 없다는 것을 잘 확인하고
치료비를 지불하고 소견서를 받아서 버스를 탔다.
내 거주지가 왜 해운대 이곳이 되었는지 그 이유로
아버지가 아들의 가족특혜가 가능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나는 그 병원에 다니기 좋은 곳으로 오피스텔을 찾았고
그렇게 우연하게 큰 병원 근처에 살게 되었던 것인데
종합병원이라는 말에 열심히 다녔던 그 병원이 떠오르고
나도 그 병원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게 되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실 때엔 모든 것을 동생이 처리해서
병원에 다니기는 했어도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몰랐는데
내 문제로 이렇게 큰 병원은 처음이어서 신기 하기는 했었다.
그래서 나도 이런 경험을 해 보는구나 하면서도
뭘 어떻게 할 건지 얼마나 큰일이 될 건지 겁이 났다.
머리의 신경이라고 했는데 신경이 뭔가에 눌리고 있는지
그럼 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수술이라는 것도 해야 하는 건지...
안경 4개를 들고 안경점에 갔다가 종합병원까지 왔는데
이거야 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거구나 했다.
억울하다고 울부짖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았으니 이 정도의 하자는 당연하다고
이때까지 그래도 무사히 잘 버텨준 것에 고마워하자고
이것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최악의 경우만 생각했다.
이건 살아오면서 내가 만든 나의 습관 같은 것인데
일이 생기면 가장 나쁜 경우만 생각해 가면서 대비를 한다.
그렇게 예방주사를 맞듯이 마음의 준비를 해 두고 나면
하나씩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똑똑하게 잘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부담감을 덜게 되고 나도 덜 불쌍해진다고
대기 번호표를 보면서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는데
엄청나게 각오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나에게
오늘 당장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복시 같은 신경과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은 3주 후라며
딱 10분간의 진료 예약을 해 주며 이것은 빠른 것이라고 했다.
난 얼른 결과가 듣고 싶어서 안과로 가면 어떠냐고 했더니
거긴 기본이 2달 후가 된다며 나는 복시로 신경과가 맞다면서
예약한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그 분야로 유명하다고 했다.
열심히 한 마음의 각오는 3주 후에나 필요하게 되었다고
허탈하게 병원을 나와 큰길 앞에 서니 멍한 내가 보였다.
안경점으로 갈 때까지는 정확하게 내 의지로 움직였는데
안과에 들려서 종합병원을 나오기까지는 그냥 떠밀려
하라고 하니 했던 것으로 느낌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들어줄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밥을 먹자고 하고
그 친구에게 가면서 마음을 정리하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아직은 아무것도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난시였다고 알았던 것이 복시로 변한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