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금식을
진료받는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대 청소도 하면서
큰일이 닥쳐도 잘 살아 낼 수 있는 준비를 해 두었다.
오후 진료에 다녀와서는 식욕이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든든하게 먹고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처음 가 보는 신경과 진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일찍 가서 분위기 파악을 하면서 병원과 친해지고 싶었다.
신경과라는 과 자체가 낯설었다.
아버지는 외과 이셨고 같이 살던 사람은 내과였다.
동생들까지 해도 신경과는 없어서 정말 생소했는데
그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경과 안에 있는 진료소마다 다 다른 분야여서 놀랬는데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나까지 보태는구나 하면서
간호원의 움직임을 보니 다들 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시간 낭비 없이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단 10분의 진료를 받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젊은 의사였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는 나이가 지긋하니 동생뻘이었는데
오랜만에 온 병원의 의사는 내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렸다.
소견서를 보이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을 했더니
당연히 운전은 해야죠 하면서 검사를 해서 원인을 찾자고 했다.
진료소를 나오니 간호원이 해야 할 검사 종류를 알려 주는데
이 검사를 내가 내 발로 걸어가서 하나씩 받아 오라고 했다.
정말 오래전에 내가 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였는데 아버지 덕분에 요란하게 입원을 하고
모든 검사에서 일일이 간호원이 따라다니며 안내를 해 주었다.
그때도 나는 사지 멀쩡한 상태였지만 병원에 다녀 본 일이 없어
많은 도움을 받으며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어 좋았는데
이번에는 검사를 내 발로 다니면서 해 오라고 했다.
진료를 받기 전에 기다리면서 느낀 것인데
간호원들이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 꼭 생년월일을 물어서
그것도 모르면서 환자를 부른 것인가 했다가 뉴스가 생각나고
환자가 바뀌지 말라고 확인하는 절차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진료를 받고 나오니 검사하는 내용울 알려주는데
정말 내가 나이냐고 생년월일을 물어봐 얼른 또렷이 말했다.
그러면서 먹고 있는 약이 있냐고 물어 건방지게 없다고 하고
몸 안에 쇠붙이가 있냐고 하는 말에도 당당하게 없다고 했다.
정말 이럴 때 나는 엄청 내가 자랑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어지럼도 있고 이명도 비염도 있는 내가 다른 것은 없어서
이 나이에 복용하고 있는 약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잘 살아왔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에서 뿌듯해한다.
검사 중에 MRI가 있어서 엄청 놀랬다.
이게 왜 필요하냐고 했더니 눈과 연결된 머릿속을 봐야 한다고
근육검사는 근육의 문제로 눈이 그렇게 보일 때도 있다고 했다.
질문을 하다가 납득이 되면서 믿음이 생기니 그냥 하자고
주의사항을 듣는데 혈액 검사는 8시간의 금식을 하고 해야 한다며
금식을 하고 MRI 검사를 하기 전에 혈액 채혈을 하라고 했다.
병원 초보자에게 딱 맞게 가야 하는 장소를 순서대로 번호를 써주고
금식은 붉은 표시로 절대로 잊지 못하게 큰 글씨로 써 주었다.
다음 진료 날짜의 일주일 전에는 검사가 끝나야 한다고 했는데
날짜가 촉박해서 혈액검사와 MRI를 같은 날에 정하지 못했더니
신경과에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는 전화를 했는데 든든했다.
내가 아는 것은 혈액 채혈뿐이어서 다른 것은 어드벤처 느낌으로
MRI 검사나 근전도 검사는 이제 나도 해 보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금식과 혈액 채혈의 주삿바늘을 가장 걱정했는데
정말 의대생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안 아프게 해 주었다.
오후 1시에 채혈을 했으니 어제저녁부터 계산하면 16시간 금식인데
근전도 검사가 3시여서 그 사이에 영상 검사실에 들려서 마치고
병원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금식을 한 나에게 보상을 해 줬다.
눈 덕분에 종합 건강 검진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