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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덕분에 가는 날짜를 정했다.

아파트 아래층의 누수

by seungmom

2월 고베 아파트의 아래층에 누수가 있다고 하면서

집안에 들어가야 하니 집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일본에서 돌아온 지 약 3주가 지났을 때의 일인데

엄청 철저하게 다 확인을 하고 왔다고 그럴 일이 없다고

모든 것을 다 리모델을 한 집이어서 아닐 거라고 했는데도

어쨌거나 아래층 누수가 있으니 위층 집을 봐야 한다고 했다.


12월 말에 돌아와서 4주 만에 다시 갔다 온 곳을 또 가야 한다니

절대로 다시 가는 것은 어려우니 현관 번호 키를 알려 주겠다고

그러니 알아서 들어가 확인해 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는데

집주인이 없이 집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허락한다는 말을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니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하면서

주인을 대신해서 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런 일에 신세를 짓는 것은 정말 싫은데 그렇다고 갈 수도 없어

염치없이 지인에게 말을 꺼냈더니 바로 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사무실 사람과 지인이 바로 연락을 할 수 있게 알려 줬다.


지인은 한번 연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도 알려 주고

당일날엔 번호키에 번호를 다 눌렀는데 안 열린다고 연락이 왔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번호를 누루고 다음엔 뭘 눌러야 하는지 아는데

열쇠를 들고 다니는 일본 사람은 모른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검사하는 것인지 집안이 얼마나 더러워지는 건지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검사 날짜가 연기되면서 시들해진 관심으로

당일날에는 잊고 있다가 현관문 여는 것으로 아 오늘이구나 했다.


내 집의 문제는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물이 샌다고 했던 집을 알아볼 거라고 했다는데

그럼 그 집을 조사하기도 전에 내 집을 먼저 의심했다는 것이 된다.

집 천장에서 물이 새면 반드시 위층의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일로 현관문에 번호키를 설치해 둔 것이 빛을 발했다.

이 오래된 아파트에 번호키를 쓰는 집은 내 집뿐일 것 같은데

부산 오피스텔 현관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멋지지도 않지만

거금 들여서 해 놓은 것이 이런 일에 쓰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이다.

내 집의 현관 번호를 아는 사람이 서너 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부러 내 집을 다시 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람일이란 모르는 것이어서 가능하면 빨리 다녀오자고 하면서도

선뜻 떠나기가 싫어서 미적거리면서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더워지기 시작하니 떠나야 하는 다른 이유가 생겼다.

처음부터 부산에서는 여름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에어컨을 대충 사서

정말 한 여름을 보내는 것은 힘이 드는지 에어컨이 불쌍할 정도였다.

대신 습한 일본 날씨를 걱정해서 넉넉한 에어컨을 방마다 설치해 놓은

고베 아파트가 여름을 지내기는 더 좋을 것 같아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현관 번호도 바꿔야 해서 가야지 하면서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가야 하는데 하면서 하소연을 했더니

전에도 놀러 온다고 했던 친구가 나도 갈까 하는 말을 꺼냈다.


가기 싫은 많은 이유들이 이 한마디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친구가 온다고 하면 청소를 해야 하는 이유도 생기는 것이고

무조건 마음에 들지 않은 환경이라도 친구의 눈으로는 다를 것이라

나도 조금은 다른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미적거리던 가는 날짜를 용감하게 정하고 비행기표도 샀다.


자랑할 만한 평수나 지역 이런 것에서는 아주 먼 아파트로

아들보다 나이가 많으며 산 중턱에 있어 구불구불 올라가야 있지만

혼자서 버틴 타국 생활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공간을

고국의 친구는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한 번쯤은 들어 보고 싶었다.


관광도 아닌 일정을 잡으려니 이 친구도 시간이 나질 않았는지

저번에도 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온다고 했던 말 한마디에

반드시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이 마음에 안 드는 나라에서 지내는 시간이 잘 흘러갔는데

이 친구의 나도 갈까 했던 말은 오지 않아도 굉장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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