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센스
지금 사는 집이 좁다.
하나 있는 방은 집세의 반을 내는 딸이 쓰고
응접실 겸 식당으로 되어 있는 곳에 아들의 침대와 책상이 있다.
아들의 침대에서 부엌이 보이지 않도록 벽처럼 선반을 놓아두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아들이 쓰고 있다.
석 달만 살다가는 나는 아들이 쓰는 공간의 반대편 측면을 쓰고 있는데
아파트의 맨 위층(4층)이어서 천장이 무척이나 높아 답답함은 별로 없다.
덕분에 내가 쓰는 공간 옆 벽은 시원하게 탁트여 있어
아들이 스크린으로 써도 되겠다는 말을 했었다.
미국에 와 3년이 되니 피난생활처럼 언제든지 떠난다는 식의 생활이
아이들에게는 청소년기가 되고 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선에서 뭐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도 했는데 전에 살던 곳은 시골이어서 가능했었다.
집세도 싸면서 방도 두 개나 되고 식당과 응접실이 따로 있는 공간이라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는 어디에 놔두어도 거치적거리지 않았다.
이사를 오면서 놔둘 때가 없어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는 사람에게 주고
매년 조금씩 늘어난 장식은 적당하게 챙겨서 가지고 왔었다.
딸이 싱글거리면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우리도 해 보자고 한다.
이사를 오면서 가지고 온 장식은 많으니 그러자고 했는데
딸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하자는 말이었고 난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곳에 이사 와서는 그저 작은 장식 몇 개를 걸어 놓는 것으로 만족을 했었는데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면서 즐겼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의 명석한 머리를 굴렸다.
이 좁은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며칠 쓰고
그 나머지는 넣어 두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니 하긴 해야겠는데...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 장식을 하는 재미만 있다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높은 벽에 나무를 만들자고 했다.
나무를 만들고 그 중간을 철사로 연결하면...
딸이 좋다며 하자고 하고
30분도 안되어 만들어 놓은 것이 이렇게 멋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불이 들어오니 환호성에 관심이 없던 아들도 보고는
빙그레 웃는다.
나도 전 같으면 얼렁뚱땅 테이프로 하는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나이가 들어 둔해졌는지 거부감이 전혀 없이 그냥 만족이 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조그만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된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몰라도
장식품 하나하나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기는 처음인 듯해서
난 지금 무척 이 트리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