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봄날
이 시간이 오면
꽃피는 봄, 만물이 기지개 켜는...
모든 것들은 새 삶을 시작하면서 경이로워진다고 하는데...
난 더 문을 닫고 은둔으로 들어가야 한다.
해가 나서 모든 색들이 요란을 떨며 유혹을 해도 훌쩍거리는 내 코를 생각하며 참고
비가 오기 전에 착 가라앉은 하늘이 들뜨게 만들어도 빗방울을 기다렸다가
비가 추적추적 내려 사람들이 꺼리는 날에 드디어 나갈 준비를 한다.
이런 봄날에 외출은 꽃가루와의 눈치 싸움이 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화장한 봄날을 즐겼다가는 며칠을 콧물에 벌건 눈을 비벼야 한다.
알레르기라는 것이 마흔이 넘어서 시작했다.
알레르기는 일본에서 살면서 처음 들었던 것으로
다들 훌쩍거리는 그 속에서 난 멀쩡해 다들 부러워했었다.
그래도 일본 생활 10년이 지나니 환경에는 이기지 못했는지
감기도 아닌 것 같은데 콧물이 나고 눈이 가려워 검사를 하니
그것도 흔하디 흔한 일본의 잡초의 꽃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래된 친구는 기왕이면 우아한 꽃으로 하지 그랬냐며 농담을 했었다.
그때부터 봄과 가을이 되면 휴지를...
휴지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니 그것은 천당의 반대편일 것 같은데
휴지 정도는 마음 놓고 살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매번 나의 재력에 든든해한다.
콧물은 몸이 안 좋으면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처음엔 풀고 나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에 힘껏 자주 풀다가 코가 헐고
너무 힘차게 용기 좋게 풀어 귀에서 고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부드럽게 고상하게 콧물을 풀어 보는데
이런 행동들 덕분에 나이가 들어도 코가 우뚝 서 있구나 했다.
코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앉아 있을 때엔 그래도 다행인데 누우면 콱 막혀 버린다.
아주 심한 날에는 앉아 자는데 그것도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젠 나이가 버티지 못해서 약을 먹고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자는데
알레르기라는 것은 내 몸이 이겨내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
당연히 늙어지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그때를 대비해서
약으로 해결을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중으로 미루자며 나름 대처를 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망각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코 주위가 벌게지고 눈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는데
어제는 앉아서 자려고 해도 버틸 수 없어 새벽에 할 수 없이 약을 찾아 먹고
숨이 쉬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잤는데
한 번에 푹 4시간을 자고 나니 어제의 고통은 다 잊고 난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심해진 것도 오랜만이네.. 하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작년 봄에는 어떠했는지 기억이 났는데
그새 잊고 오늘의 고통을 지겹지 않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