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헬스장을 관두고 어떤 운동을 배우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 문득 복싱이 떠올랐다. 복싱? 전투적인 이미지와 아주 반대인 내가 갑자기 복싱을 떠올리다니. 그 이유는 바야흐로 6년 전, 첫 회사 팀장님께서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승띵아, 너는 소심하니까 운동만큼은
그런 성향을 극복할 수 있는 운동을 배워봐.
예를 들면 복싱 같은 거.
참고로 팀장님 대사는 실제와 다르게 순화해서 적었다. 다시 말해 '내가 왜 저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싶은 문장이었다. 아마 언짢은 기분이 아직까지 나를 휘감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복싱을 배워볼까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 맞서려는 결심은 섰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유독 복싱은 용기가 안 났다. 애꿎은 복싱 관련 블로그만 들여다보며 며칠을 보냈다. 갈까 말까 고민만 하고 있는 상황에 괜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정도면 내 본능이 안 맞다고 거부하는 듯. 다른 거 찾아보자'
복싱에 대한 고민은 이상한 합리화(?)와 함께 마무리됐다.
다음은 수영에 꽂혔다. 하루는 은사님을 찾아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새로 배울 운동을 찾고 있다고 하니 수영을 추천해 주셨다.
나이 60 넘어 친구들이랑 좋은 호텔에 놀러 갔는데 다들 수영장에서 잘 놀더라.
나는 수영할 줄도 몰라서 그냥 발만 담그다가 왔는데 그게 너무 아쉬웠어.
나는 완벽히 공감했다. 가끔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 눌러갈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물장구치는 것마저 어색했다. 금방 흥미를 잃고 사진만 몇 장 찍다 숙소로 돌아갔다. 그럴 거면 귀찮게 옷은 왜 갈아입고 수영장은 왜 갔나 싶을 정도였다.
이젠 행동으로 옮길 때다. 바로 집 근처 수영장을 알아봤다. 적절한 곳이 없어 회사 근처로 눈을 돌렸다. 회사 근처 수영장은 한 달에 10만 원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도 배움에 쓰는 소비는 투자라고 (누군가) 그랬다. 배달 음식, 술값에 쓰는 10만 원보다는 훨씬 값진 지출일 테니까. 결국 의욕 충만한 내 몸뚱이는 오전 6시 수업을 선택했다. 잠을 줄여가며 다니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세 달 다녔다. 여기서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다들 눈치챘을 거다. 한 겨울,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수영장에 도착해야 하는 일상이 너무 힘들었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수영장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수영 자체는 참 재밌었다. 항상 초급반 맨 뒷줄에서 놀았지만 발전할 때마다 기분 좋았다. 이제는 몸이 물에 뜨고 엉성하지만 헤엄도 칠 수 있다. 그럼 됐다. 난 이 정도로 만족할래.
그렇게 3개월 수영을 배우고 미련 없이 끝냈다. 다른 운동을 찾아 또 떠나는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