貴人 (귀할 귀, 사람 인)
그냥 같이 살자
누구에게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귀인이 나타난다고 한다. 다만 그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평생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내 나이 서른, 전세사기를 당했다. 끝없이 불안한 나날을 보낼 줄만 알았던 그때, 나는 귀인을 만났다. '같이 살자'는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버티게 했다. 오늘은 그 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잠시 무너졌지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과 환경,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만들어 준 단 한 사람. 나는 현재 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작고 소중했던 원룸을 벗어나 침실과 옷방이 구분된 집에서 살게 됐다. 서울에서는 원룸 생활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 하루아침 달라진 삶이 신기했다.
집 가까이 양재천이 흘렀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회사는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귀인이 아니었다면 누릴 수 없는 생활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렇게 불안정했던 내 삶이 중심을 잡아갔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한 건 결국 귀인 덕분이었다.
두 말하면 입 아프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귀인은 나에게 어떤 조건이나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온전히 ‘나’로 지낼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었을 뿐이다. 등기부등본에 적힌 ‘동거인’이라는 세 글자는 귀인이 내 삶에 새겨진 의미를 담아내기엔 한참 부족하다.
요즘 들어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서로가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감정이 치솟는 말다툼을 하고 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 '내가 이래도 되나'싶은 자격지심이 올라온다. 결국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무게 앞에서 주저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귀인이라고 부른다.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사람. 나를 지탱하게 한 단단한 이유. 평생 함께 싸우고 웃으며 살아가고 싶은 단 한 사람. 내 삶에 귀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귀인을 귀인으로 알아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다시 살아가고 있다.
루틴을 만들며 살아가게 해 준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함께 나눠준 사람, 고마워. 덕분에,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 그리고 오늘은,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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