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편지
드림이에게
아빠가 엄마한테 프로포즈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줄까. 엄청 잘했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세련되고 고급진, 혹은 분위기 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 가위질에는 도통 소질이 없는데도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오려서 집을 꾸몄고, 책상 위에 조촐한 선물만 올려 둔 것이 전부였어. 나름 비장의 무기는 있었어. 엄마를 생각하며 쓴 시를 묶어 시집을 만들어서 주긴 했지. 사실 아마추어가 쓴 시가 뭐 그리 대단했을까마는.
아무튼 이렇게 서투르게 준비를 마치고 아빠 마음은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 하던지. 그래도 엄마는 그게 무척 좋았는지, 결혼 후에도 그 시들을 기억하고 있더구나. 지금도 네 엄마는 늘 아빠의 서투르고 어색한 것들을 좋아하는데, 나로서는 참 감사한 일이지.
아들아. 네가 태어나고 100일이 되었을 무렵,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올라와 축하한다며 현금을 주고 가셨다. 금액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은 안 나고, 흰 봉투에 쓰여있던 말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유현이 지영이 사랑해” 였던가, 아니면 그런 비슷한 말이었는데. 사실 그 문장보다 기억에 남는건 할머니의 글씨체였어. 할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시지 못하고, 글씨도 제대로 배워보신 적이 없는 분이다. 그 때 그 봉투에 쓰인 글자들도 삐뚤빼뚤 서투르고 어색한 글씨였지.
근데 아빠는 할머니의 글씨를 이전에도 본적이 있지 않았겠니? 뭐랄까 그 날의 글씨는 조금 달라보였어. 짧은 문장을 할머니가 정성들여 쓰신 것 같은 느낌이 이상하게 들더라. 그래서 할머니에게 물었지. “정성 들여서 쓰셨는데?”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면서 “몇번 연습하고 썼어.” 하고 대답 하시더구나.
몇번 연습하고 썼어
드림아,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어린이들이 부르는 합창을 한 번 들어 보았으면 한다. 어린이들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 발성법도 배우지 못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은 능숙함이 줄 수 없는 감동이란다.
모든 것이 프로페셔널함을 추구하는 시대이고, 네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 그렇게 될테지. 그래도 아빠는 네가 가끔은 서툴렀으면 좋겠다. 너의 마음을 멋스럽게 표현하려고 다듬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완벽함이 아니라, 서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아빠는 경험했거든.
그러니 아들아, 아빠는 네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누군가에게 고마울 때, 누군가를 존경할 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서투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 너에게 서투르게 다가 올 때, 그 너머에 있는 진심을 알아 볼 수 있을만큼 지혜롭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를 향한 엄마 아빠의 서투른 사랑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