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갈대같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아빠로서 욕심이 많은 건지, 아기랑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다. 아무래도 내가 축구를 좋아하니까 같이 공놀이도 가고 싶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이랑 시답지 않은 말장난도 빨리하고 싶다. PC방을 가서 게임도 한 번 같이 해보고 싶고, 못 치는 실력이지만 볼링장도 한 번 같이 가보고 싶다. 또 온 가족이 서점에 가서 뿔뿔이 흩어진 다음, 각자 사고 싶은 책을 골라 정해진 시간 뒤에 만나 책을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소소한 일상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또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여행지나 데이트 장소에, 이번에는 아이까지 셋이 함께 다시 가보고 싶다. 임신 7개월 때 셀프 만삭 사진을 찍으러 갔었던 남해에는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가서 “드림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 아빠랑 여기 와서~” 하며, 아직 아이가 관심도 없을 만한 얘기를 떠들게 된다고 해도, 그냥 해보고 싶은 일이다.
뮤지컬도 보러 가고 싶다. 이를테면 <윤동주, 달을 쏘다> 같은 뮤지컬을 보러 가면서 “엄마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컬인데~” 라고 아이 앞에서 아는 척을 할 수도 있겠고, 뮤지컬을 보면서 이제는 둘이 아닌 세 명이 나란히 눈물을 질질 짜며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그림이 벌써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아마도 <달을 쏘다> 라거나 <시를 쓴다는 것> 같은 뮤지컬 넘버를 틀어 놓고 온 가족이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다 하기에는 아직 아이가 너무 어리다. 아직 걷기는커녕 기어다니지도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빨리 컸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완전 반대의 마음도 함께 품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저 단순히 아내랑 둘이 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빨리 커서 독립해라. 엄마랑 아빠랑 오붓하게 놀러 다니게”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빨리 커라’하는 마음이 불현듯 생기게 되면, 동시에 ‘앗 안돼’하는 정반대의 생각이 마음속에서 불쑥 일어나 계속 엎치락뒤치락 한다.
지금 아기의 모습은 정말 ‘지금’이 아니면 또 볼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크고 있다고 느껴진다. 매일매일 보는데도, 어느새인가 보면 새삼스레 커져 있다. 몸무게도 늘어나 있고, 키도 커져 있고, 배앓이도 하지 않고,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가 나기 시작하고, 어느새 조금씩 앉아 있을 수 있게 되고, 조금씩 낯도 가리고 엄마 아빠를 알아 보고... 산부인과에서 찍은 사진부터 쭉 돌아보면,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정말 눈에 띄게 자랐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면 또 ‘천천히 커라’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정말 너무 천천히 크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도 든다. 남들이 보면 “어쩌라는 건지 쩝” 싶겠지만, 솔직한 마음이 그런 것을 어떡하랴. 아이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지금의 이 귀여운 모습들과 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오래 간직해 두고 싶기도 한 것을.
여태 스스로를 비교적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보다. “빨리 커라” 와 “천천히 커라” 사이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모순된 두 마음을 동시에 품는 삶이 기본값인 나날들이 찾아올 줄이야.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인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것도 저것도 다 내 욕심인 것만 같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순리대로 건강히 크거라’ 생각하며 나름 중심을 잡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