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만화가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전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발간 이후 유시민 작가는 다양한 접점을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해왔다. 여러 차례의 오프라인 강연과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글쓰기라는 주제로 더 많이 얘기하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책을 한 권 쓰고 읽는 행위만으로도 작가와 독자는 깊은 교감을 주고 받는 법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소통을 한다면 분명 더 많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 전작에서 못다한 얘기를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의 글만을 떼어내 정의한다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대한 보론 정도로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 뒤, 독자들과의 많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앞서의 책 내용에 덧붙이고 싶은 얘기를 쓴 책.
전작과의 연결성이라는 특성 외에도, ‘표현의 기술’은 그 표현 방식에서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이 책은 유시민의 글과 정훈이의 만화가 묘하게 어우러진 콜라보레이션이다. 유시민 작가가 먼저 정훈이 작가에게 공동작업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묘하게도 글과 만화가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유시민의 글이 흘러가는 도중 정훈이의 만화가 툭 하고 한 페이지씩 튀어나오는 식으로, 유시민은 정훈이의 만화가 자신의 글을 꾸미는 삽화가 아님을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유시민의 글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뛰어난 수준의 논리적 완결성임을 생각하면, 이런 산만한 구성은 그답지 않은 파격으로 볼 수 있다. 내 짐작에 이런 파격적인 구성은 유시민 작가가 책을 구상할 때 의도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이 독특한 구성 자체가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그가 '표현의 기술'이라는 제목 안에 담고 싶었던 내용의 일부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실마리는 유시민 작가의 서문에 있었다.
건축디자인 하는 분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강의와 질의응답이 모두 끝난 뒤 어떤 젊은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치는 문제하고 똑같았어요. 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말이 이 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유시민/정훈이, '표현의 기술', '책을 내면서' 중에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들 사이에는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유별나게 새로울 것도 없다. 글, 디자인, 음악 등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유시민 작가는 위의 일화를 통해 ‘모든 표현 행위는 수단과 방법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를 따른다’라는 명제를 재확인했을 터이고, 그 깨달음을 구상 중이던 책의 표현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단순한 수단을 넘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가 이 책을 구상하던 당시의 생각을 좇아가봤다.
'글쟁이는 글로, 만화쟁이는 만화로 자신만의 '표현의 기술'을 표현한다. 서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표현에 집중하는 모습은 자유로운 동시에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표현 행위는 같은 원리를 따르므로, 두 사람의 표현법은 전혀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의 주제를 표현해가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이고, 독자들도 내가 건축가 청년과의 일화에서 느낀 것과 같은 관점의 전환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내가 짐작한 바가 작가의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이 맞다는 가정 하에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평한다면, '음...글쎄, 아주 전달이 잘 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군. 작가의 뜻을 짐작해가며 읽는 것이 누군가에겐 즐거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지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은 것은 아니고, 즐겁게 읽었다. 1장을 읽는 도중 그의 글쓰기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주문했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삶을 지지하는 팬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