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3 (금)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이날 하루는 온전히 카트만두 관광에 쓰기로 했다. 다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채비를 마친 뒤 오전 10시경 봉고차를 탄 시리가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10월의 카트만두 날씨는 여름과 같아 햇살은 강하고 공기는 건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디젤차와 오토바이는 쉴 새 없이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데, 비포장 도로 위로는 흙먼지가 뿌옇게 휘날리고 있었다. 이날 관광을 위해 차량을 대절한 건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대중교통이나 도보로는 무리였을 것이다.
먼저 향한 곳은 스와얌부나트 사원, 일명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카트만두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고지대에 위치해있었다.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종교 문화재답게 사원 내부는 기도하러 온 현지인, 구경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들 무리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래된 사원 건물 한편에는 장신구와 기념품을 만드는 세공장이들, 그리고 상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사람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막 돌아다니고, 앉아서 저들끼리 장난도 치고, 털도 골라줬다. 한편 원숭이만큼이나 팔자 좋은 개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는데, 이 동네 개와 원숭이는 견원지간이란 사자성어가 무색할 만치 서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원숭이, 개에 더해 비둘기 떼도 한몫 거드는 통에 온통 짐승 판이었다. 이 짐승들의 털이 뒤섞인 흙먼지가 휘날리는 통에 kf-94 마스크를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나와서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향했다. 이곳 또한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유네스코 이름값 때문인지 입장료를 무려 인당 1,000루피씩 받았다. 사실 난 들어가기 전까지 여기가 뭐하는 덴지도 모르고 그저 가자니까 따라간 것이었는데 웬걸, 들어가 보니 이 곳은 화장터였다.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물가에 화장터를 세우고, 이생을 떠나는 사람의 육신을 태워 물로 떠내려 보내는 곳이다. 시리에 따르면 카트만두의 힌두교도는 모두 여기 와서 장을 치른다고 한다. 네팔인의 80% 이상이 힌두교도라고 하니 카트만두 사람 태반은 다 여기서 이생의 강을 건널 것이다.
시신에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송장 태우는 물가 옆으로는 원숭이 떼가 천진하게도 노니적 거리고 있었다.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이었지만 기분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송장 타는 냄새나는 장례식장 구경이 유쾌할리 없지 않은가. 한 바퀴 둘러보고 금방 다시 걸어 나왔다. 1,000루피씩 내고 들어가서 구경할만한 거리는 아닌 것 같았다. 장례식의 관광상품화, 이생의 마지막 강을 건너는 이들의 의식에 유네스코 인증을 받아 입장료를 걷어야 하는 빈국의 현실, 이렇게 생각하니 한층 더 무겁게 느껴졌다.
우린 무거워진 기분을 털어 버리고 싶었다. 마침 율이 좋은 곳으로 우릴 인도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찾은 곳은 카트만두의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든 오브 드림(Garden of Dream), 1920년에 건축했던 왕궁을 복원해 레스토랑과 카페로 꾸민 곳이다. 이 곳은 진정 별천지였다. 매연과 흙먼지가 휘날리는 바깥 거리는 다른 세상인 것 마냥, 하얗고 높은 담벼락 너머로 예쁘게 가꾼 정원수와 연못을 품은 왕족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어색한 나머지 조금 초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빈국의 왕족이 노닐던 정원이라, 아마 출가 전의 붓다가 보고 자란 풍경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시켜 먹고 정원 구경을 한 뒤, 나와서 타멜 거리를 향했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여행사를 다시 찾아 비용 정산을 마치고 시리에겐 팁을 드렸다. 다음날 숙소로 픽업할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돌아 나와 쇼핑을 나섰다. 일행들은 곧바로 캐시미어 샵으로 향했다. 아침에 숙소 사장님한테 추천을 받은 곳이다. 내가 남체에서 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100% 캐시미어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찾아가서 구경하고 만져보니 과연, 촉감이 훌륭했다. 일행들은 여기서 많은 돈과 시간을 썼다.
난 캐시미어보다는 티셔츠에 끌렸다. 네팔은 인건비가 워낙 저렴한 탓에 때로 '이게 이렇게 싸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는데, 티셔츠가 그랬다. 한국에서 흔히 파는 것처럼 문양이나 그림을 스티커나 염색 처리한 것이 아닌, 색색의 실로 한 땀 한 땀 박음질한 제품을 단돈 500루피에 팔고 있었다.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박아 넣은 자수 티셔츠를 한화 6천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니,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난 티셔츠만 대여섯 장을 사 와서 나도 입고 지인에게 선물도 했다.
곧 해가 지고 배가 고파왔다. 우린 전날 여행사 사장님이 추천해줬던 로드 하우스 카페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전날 갔던 카트만두 스테이크 하우스보다 가격은 조금 비싸고, 조명과 분위기는 조금 더 고급진 곳이었다. 스테이크, 피자, 샐러드와 맥주를 주문해 배불리 먹었다. 훌륭했다.
전날처럼 맥주 몇 캔을 사서 숙소에 들어갔다. 씻고 둘러앉아 내가 남체에서 샀던 캐시미어와 일행들이 타멜에서 산 캐시미어를 놓고, 찬과 혜정에게 눈을 감게 한 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다. 놀랍게도 둘 다 맞추지 못했다. 내가 산 제품이 무려 다섯 배 저렴했는데 말이다. 근데 뭐, 선물은 받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내가 남체에서 산 캐시미어는 검은색 비닐 봉다리에 넣어 배낭 속에 구겨 넣어 지고 내려온 것이고, 이 친구들이 산 캐시미어는 고급지게 선물 포장된 것을 받아왔으니, 받는 분들 마음도 다섯 배는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쓰면 이 친구들 마음이 조금 위안이 되려나.
맥주 두 캔씩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제 내일 헤어지면 다음엔 한국에서 본다. 귀국해서 일주일 뒤 뒤풀이를 할 것이다. 연희동 편의방에서 만두와 요리를 시켜먹으며 칭따오를 마신 뒤 건너편 길가의 맥주집에서 2차를 하기로 했다. 찬은 나한테 체스를 졌으므로 나한테 편의방 만두를 포장해줄 것이고, 혜정이는 원카드 내기를 진 덕에 2차를 쏠 것이다. 근데 하필 그날은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다 같이 갔다 와야 하는데, 여기서 2주일 동안 거지꼴을 하고 보던 사람들을 멀끔한 모습으로 만나면 또 얼마나 웃길 것인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해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