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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an 08. 2018

바른 마음

도덕심리학, 진화, 후진 번역

조나단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었다.




저자는 현존하는 도덕심리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도덕성 기반 이론의 창시자로, 인간의 도덕성을 진화의 산물로 해석한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옳다(그르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심리 기제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생존과 번식에 이로운 특성들이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TED 강의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 또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쓴 것으로, 일반 독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례와 비유를 세심하게 사용한 흔적이 군데군데 엿보인다. 다만 번역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탓에 저자의 의도가 한국 독자들에게 거의 전달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직관이 먼저고 추론은 그 다음이다.


요즘 말로 하면 '답정너'가 되겠다. 어떤 행위에 대해 '옳다(그르다)'는 판단을 내릴 때에는 직관이 먼저 답을 내린 후, 그에 부합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추론을 한다는 얘기다. 좋거나 싫은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없이 그냥 좋거나 싫은 것이다. 흔히 정치 논쟁에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리는 직관을 설득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를 '코끼리와 기수' 비유로 설명한다. 직관이라는 코끼리 위에 이성이라는 기수가 올라타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코끼리가 이미 답을 정해 발걸음을 성큼성큼 내딛는 와중에 기수는 코끼리 위에 올라타 쩔쩔매고 있다. 기수는 코끼리의 몸종 같은 신세로, 코끼리가 정한 답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누군가의 도덕적 마음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코끼리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논리적 설득은 상대의 기수를 향한 것이므로 성공할 가능성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2. 도덕적 마음과 관련된 심리 기제는 여섯 개다.


저자는 도덕적 마음의 기원을 진화심리학에서 찾는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현대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과 행동 특성은 모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다. 도덕적 마음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편 저자는 '여섯 가지 미각'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인간은 여섯 개의 미각 수용체를 이용해 도덕을 느낄 수 있는데, 진보주의자는 이중 세 개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여섯 개 모두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멋진 비유라고 생각한다. 여섯 개의 도덕 미각은 다음과 같다.


1) 양육 (caring / harm)


어린 아이를 보살피고 키워내는 것과 관련된 심리 기제다. 어린 아이를 잘 보살피는 능력이 유전자의 번식 성공에 기여했으므로, 우리 마음은 아이를 양육하는 심리 기제를 진화적으로 발달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나쁘다고 여긴다.


2) 공정성 (Fairness / Cheating)


인류는 상호 협력을 통해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높혀 왔고, 그 결과 협력과 관련된 유전자가 우리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호의에는 고마움을, 부정 행위에는 분노를 느낀다.


3) 충성심 (Royalty / Betrayal)


농경생활과 왕국을 발명하기 전, 인류는 150여명 내외의 작은 무리를 이뤄 생존하고 번식했다. 따라서 무리에 대한 충성과 배신자에 대한 처단이 무리의 존속에 중요하게 기여했고, 그러한 유전자가 인류의 마음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소속한 집단에 긍지를 느끼고 배신자에는 분노를 느낀다.


4) 권위 (Authority / Subversion)


권위에 대한 복종은 수많은 종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특성으로, 무리의 혼란을 제어하고 효과적인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순기능을 제공한다. 위계서열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올리는 동시에 윗사람의 보호를, 아랫사람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전략은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정당한 권위에 존경을, 불복종에 반감을 느낀다.


5) 존엄성 (Sanctity / Degradation)


더러운 것을 피하고 깨끗함을 추구하는 특성이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먹이 중 위험한 것을 구별해내는 능력으로 일종의 행동 면역체계를 발달시켜 왔는데, 때문에 더러운 것을 보거나 상상하면 구토감을 느낀다. 이 행동 면역체계는 다른 인종이나 종교, 사상에까지 반응한다.


6) 자유


최초의 도덕성 기반 모형은 위의 다섯개로만 구성되었으나, 저자는 후일 자유/압제의 요인을 추가한다. 인류가 언어와 무기를 사용하게 된 뒤로는 부당한 권력자를 처단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부당한 권력자를 처단하는 일은 개인과 집단 모두의 적응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압제에 대한 혐오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서 발견되는데, 둘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진보는 장소에 관계없이 모든 곳의 약자에 대한 압제를 혐오하는 반면, 보수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압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저자의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여섯 개 도덕 미각 중 진보주의자는 양육, 자유, 공정성에만 반응한다. 보수주의자는 여섯 개 모두에 반응한다.


본문 발췌. 위의 초안에 더해 후일 '자유' 기반을 추가한다.



3. 모두 기능적 가치가 있다.


종교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다. 9/11 테러 이후 우파는 이슬람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고, 좌파는 이슬람교가 문제가 아니라 근본주의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한편으로 리처드 도킨스 등 신 무신론자들은 종교는 인류 역사에 도움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으므로, 이젠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 무신론자들에 대한 반론으로, 종교 또한 인류의 적응과 번식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정치 갈등 또한 매우 심각하다. 미국은 과거에 비해 정치적으로 훨씬 양극화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이 출간된 2012년은 지금 2018년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좀 식상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각각이 기능적으로 가치가 있음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진보, 자유, 보수주의자는 여섯 개 도덕 기제에 다르게 반응한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그리고 이 여섯 개의 도덕성 기제가 항상 그 자체로 옳지는 않지만, 나름의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용납하기 싫은 '권위'에 대한 복종도 사회 결속, 효과적 협업, 질서 유지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은 내 생각


본래 한 주면 다 읽겠거니 했던 이 책을 다 읽는데 두 주가 넘는 시간이 걸린 까닭에는 형편없는 번역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원서가 아니라 번역서를 읽는 이유는 시간과 노력을 적게 들여 쉽게 읽기 위해서이다. 난 반의 반절도 읽지 않아 '차라리 원서를 읽을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번역을 잘 하기 위해서는 원어 독해 능력, 한국어 글쓰기 능력, 그리고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번역자의 한국어 글쓰기 능력과 심리학 지식이 많이 아쉬웠다.


사실 이런 책은 번역하기 어렵다. 한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내용을 한 권의 대중서로 녹여내는 것이니, 저자 본인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 더욱더 번역에 공을 들여야 한다. 용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읽기 어려운 번역서는 작가와 대중을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도덕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이라는 재미있는 주제가 이렇게 대중에게서 멀어져 갔다고 생각하니 새삼 우울해진다.


번역서는 구매하기 전에 본문을 좀 읽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진화심리학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대중서보다는 리뷰 논문을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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