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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Feb 18. 2019

웅크린 호랑이

피터 나바로의 대중국 전략

이 책의 저자 피터 나바로는 무역 제조업 정책국장이자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역정책 관련 핵심 참모이다. 보호무역주의 강경정책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가 저자의 전작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을 읽고 장인에게 추천해 정계에 입문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링크).



저자는 미국이 치르고 있는 대중 패권 전쟁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측의 중국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 사상, 전략의 기초가 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서술한 내용은 2018년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과 일련의 상징적인 사건들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화웨이 금수 조치, 푸젠진화 공장 가동 중단 등).


국제 관계나 지정학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이 분야를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분석 틀은 군사적 관점이다. 국가 간 역학 관계를 과거 자원과 영토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의 역사에서 조망하고, 현재의 국경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 시나리오를 만들어, 향후 각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방 연구의 워게임(War Game) 시나리오에 반영되기도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취하는 관점의 대부분도 이런 군사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최강대국 미국과 그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의 역학 관계를 군사, 영토, 자원, 그리고 경제력과 기술력 관점에서 분석한 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바로 경제력으로 중국을 제압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의 분석 중 핵심적인 내용 몇 가지를 정리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중국의 군사력은 이미 심각하게 위협적인 수준이다


이미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군사비를 많이 지출한다. 금액으로는 여전히 미국이 중국의 3배 이상을 지출하고 있지만, 중국의 값싼 인건비, 중국이 헐값에 탈취해가는 핵심 기술 등을 고려하면 단순 금액 비교보다 차이가 훨씬 줄어든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전략 자산인 핵무기, 항공모함 등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 만리장성에 구축한 핵미사일 갱도는 미국의 핵 선제 타격을 무력화시켰으며, 항공모함 킬러인 대함 탄도미사일과 수많은 미사일 쌍동선, 잠수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적은 국방비를 지출하면서도 미국의 핵심 전력을 무력화시킬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2. 앞으로 중국이 선한 의도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과거 반 세기 동안 중국은 한국, 인도,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모든 주변국과 전쟁을 치렀다. 지금도 육상에서는 인도, 해상에서는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 등과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다. 중국은 분쟁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교, 군사, 통상 압박을 가한다.



3. 주요 동맹국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은 타국 영해 12해리(약 22.4킬로) 밖에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는 '항해의 자유'를, 중국은 자국 영해 200해리(약 380킬로) 내에서 타국 선박의 항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영해의 권리'를 내세우며 남중국해에서 맞서고 있다. 대만 같은 나라와 중국 간 분쟁 발발 시, 미국은 과거와 같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민주당은 군사비를 감축하도록 압박하며, 그 결과 실제로 F-35와 같은 핵심전력 예산이 대폭 절감되고 있다. 이제 동맹국은 과거와 같이 미국을 신뢰하지 못하며, 점차 더욱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보다 더 커지는 상황이 오고 있다.



4. 적은 국방비로 효과적으로 중국을 제압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공군기지의 분산, 더 많은 잠수함, 기뢰 사용 전략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5. 경제력으로 중국을 제압해야 한다.


군사력으로 중국을 제압하는 것은 비용은 많이 들지만, 사실 완전히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결국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이뤄지므로, 통상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군용 및 민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지적 재산권 탈취를 금지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저자의 주장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통상 분쟁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미국과 동맹국에 의해 화웨이 창립자의 딸이자 CFO인 멍완저우가 구속 기소되고, 반도체 굴기의 대표주자인 푸젠진화는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2018년 중반쯤만 했어도 미국의 중국 흔들기가 트럼프의 국내 정치용이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지만, 이제 미국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중국이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전에 기술 분야에서 확실히 주저앉히는 것이다.



생각을 마무리하며


한국 정부와 제조기업들은 이 상황을 잘 처신하고 이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의도치 않았던 행운을 누리고 있다. 불과 작년까지만 했어도 '중국 제조 2025',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을 제칠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던 중국을, 미국이 주저앉힘으로써 시간을 벌게 되었으니 말이다.


늘 같은 일상,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이지만,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아마 세상은 항상 이렇게 흘러왔을 것이다. 한편에서 평화로운 세상의 반대편 어딘가에선 항상 충돌과 파열음이 일어나고 있다.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풋내 어린 정의감을 행사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공포와 비관론, 음모론 따윈 무시하고 나의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과 자기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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