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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Mar 03. 2019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한국 독자를 위한 금융의 종합 개설서

이 책의 저자는 학계와 산업계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금융 전문가다. 학교에서 경제학, 회계학, 재무론, 금융론 등을 공부하고 유로 채권 시장에 대한 효율성 검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삼성그룹 비서실과 매킨지 등 유수의 기업에서 폭넓은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인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지금은 부총장).


저자는 책머리에서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해 인용해본다.


이 책은 그동안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금융을 취급해 온 내가 '금융에 입문하려는 이'와 '금융에 종사하고 있는 이'를 염두에 두고 펴낸 '금융의 종합 개설서'다. 금융은 회계학, 거시경제학, 화폐금융론, 재무론, 투자론, 국제금융론 등 다양한 지식 체계가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그 본령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초심자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을 구성하는 다양한 지식 체계에 대해 선행 학습이 충분치 못한 독자들이 금융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금융은 통합적이지 못하다. 회계학에서는 기업의 재무적 정보가 어떻게 생성되는지 다루고, 거시경제학에서는 고도의 추상성을 전제로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 다루며, 재무론에서는 기업의 재원 조달 및 투자 의사 결정의 사이클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화폐금융론, 투자론, 파생상품론, 금융기관 경영론, 국제금융론, 외환론 등 이차적으로 분화된 과목들이 경상 계열의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학문의 분파성이 높은 까닭에 금융에 입문하려는 이는 물론 금융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까지도 금융의 전체 상을 갖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이것이 바로 미흡하나마 금융의 종합 개설서를 펴낸 배경이다.



저자는 일반인에겐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개념들을 일상의 예시로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도, 깊이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사모펀드, 금융위기와 같은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쪽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한다. 저자의 지적 성취와 균형 잡힌 사유를 본받고 싶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상업은행, 중앙은행, 투자은행, 펀드, 주식회사, 파생상품, 금융위기, 세계 금융지도. 모두 일상의 현실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주제다. 중간중간 나의 현실에 대입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삼천포에 빠져가며 읽느라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특히 기업 인수와 관련한 내용에서, 나의 직장이 처한 상황을 대입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전반적으로, 평소에 몰랐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자세하게 알아갈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교과서 삼아 여러 번 다시 읽어야할 책이니 요약은 생략하고, 이 글에서는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 위주로 정리해본다.



기업 지배구조 논쟁


5장 '주주가치를 높여라'의 보론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주식회사'라는 가상의 인격체는 경영자, 노동자, 주주라는 이해당사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 중 누구의 주권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자본주의를 채택한 모든 사회에서 겪어왔다.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주주 주권을 중시하는 논리와 노동자 주권을 중시하는 논리로 나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음에 기인한다.


영미권과 유럽권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서로 다른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주주 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독일식 자본주의는 노동자 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전자를 앵글로-색슨 형, 후자를 라인(강) 형이라고도 한다. 영미식은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 모델이며, 독일식은 시장의 효율과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모델이라고 한다. 전자의 기본 이념은 신자유주의, 후자의 이념은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다.


저자에 따르면 위의 영미/대륙의 구분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직접금융(주식시장)을 발달시켜온 결과 주주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혁신에 실패하는 경영자는 주주에 의해 강제로 퇴출되는 문화가 정착했으며, 이런 혁신의 원동력이 실리콘밸리 테크 자이언트들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반면 독일식 자본주의는 간접금융(은행)을 발달시켜왔고, 자본과 노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업 지배구조가 설계되어 있으며, 경영자들은 수시로 교체되지 않으며 기술 축적에 전력을 경주할 수 있다. 요약하면, 영미식 자본주의는 금융의 분권화(금융과 실물이 분리)와 유동성을 중시하는 반면, 독일식 자본주의는 금융과 실물을 연계하고 금융의 헌신성을 중시한다.


저자는 영미식과 독일식 자본주의의 차이를 균형 잡힌 관점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미에서, 독일식에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들며 '주주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적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90년대 초 일본 버블 붕괴의 원인은 실물경제의 무절제를 간접금융(은행)이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절상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게이레쓰(재벌)들이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재테크에 치중하는 것을 은행이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과 같이 주주 자본주의가 정착한 사회였다면 주주들이 규제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주주 주권과 노동자 주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충분히 노력을 한 듯 하나, 아마도 내심은 '주주 자본주의를 잘하는 것이 좋다'라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역사와 현재는 어떠한가? 이와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인 97년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융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97년 한국 금융 위기


외환위기를 두고는 지난 20년 간 설왕설래가 많았다. 여러 가지 설 중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설은 '글로벌 투기 자본의 공격'에 초점을 맞춘 음모론이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의 설명은 내가 여태껏 들어본 설 중 가장 객관적인 것 같다. 다음은 본문 인용.


그러나 외부 조건론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은 자칫 균형감을 상실하는 것일 수 있다. 통화 위기는 현상적으로 자본 자유화의 조건 하에서 외국 자본의 과잉 유입, 과잉 유출이 환율 변동을 교란시킨 사태이지만, 외국 자본의 광폭한 유출, 유입의 배후에는 이를 조장하거나 부추긴 국내적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외부 조건에 내부 결함의 관점을 결합해야만 보다 종합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96년 당시 한국 경제는 GDP의 50%를 차지하는 재벌이 ROA 0.2% 수준의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하는 가운데 부실이 심화되고 있었다. 재벌들은 이 와중에 부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과거 관치금융 시절의 습성대로 부실한 몸집을 계속 키워나갔고, 종금사를 세워 단기 외채(달러 빚)까지 동원해 레버리지를 늘려나갔다. 이러는 와중에 김영삼 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치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본의 본성은 수익을 추구하고 손실을 회피한다. 한국에 달러 빌려준 외국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 '얘네 돈 빌려가서 하는 짓거리 보니 엉망이구나. 돈 떼이기 전에 어서 돈 빼자'. 헤지펀드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자 -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비싸게 올려놓은 상태에서 달러가 회수되니 원화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겠구나. 숏을 치기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군'. 이러니 개뿔,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내가 한 생각은, '정치인, 경제인, 일반인 모두가 금융에 너무 무지했기 때문'이다. 더 일반적이고 세련된 수사로 표현하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금융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금융의 본질은 위험(리스크)을 거래하는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거나, 위험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수익을 얻는 모든 행위가 금융이다. 관치금융이라는 무위험의 온실에서 자라온 신생 국가의 기업들이, 글로벌 투기 자본의 돈을 겁도 없이 갖다 쓰면서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워가는 와중에, 정부까지 겁도 없이 인위적으로 고환율을 떠받쳐 올렸으니...그 결말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제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IMF 구제금융은 한국 사회 모두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민은 과거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일반인의 금융 지식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아직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평범한 직장인은 대출받아서 아파트 한 채 사고 퇴직할 때까지 대출금 갚으면서 사는 게 보편적인 공식이다. 2017년 기준 가계 자산의 73.6%가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다고 하니, 분산 포트폴리오의 관점으로 봐도 건전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금융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고, 심지어는 도덕적으로 낙인찍고 경시하고 터부시 하는 문화마저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금융맹으로 사회에 나와 근로소득만으로 현금을 창출한다. 사회생활을 몇 년 하고 결혼이나 집 장만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쯤이 되어서야 뒤늦게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지만, 그러다 대부분은 결혼 후 집 장만하면서 근로소득의 대부분을 모기지론 갚는데 쓰며 거의 한 평생을 살아간다.


이제는 공교육 과정에 금융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금융이란 위험/리스크/불확실성을 거래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며, 위험/리스크/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모든 요소는 위험 거래에 기반하고 있다. 신용화폐, 상거래, 근로계약, 저축, 대출, 보험, 이 모든 것들이 다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거래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이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확실하고 영원한 진리 같은 건 한 톨도 없다는 사실과,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도구로 금융을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책머리에 자식들의 이름을 적은 저자의 생각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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