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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Nov 05. 2019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인간 마음의 기원과 작동 기제에 대해서

저자 스티븐 핑커는 책을 두껍게 쓰기로 유명한 분이다. 이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962페이지, 다음 책인 '빈 서판'은 902페이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1402페이지다. 혼자 읽으면 완주하기 어려운 분량이다. 우연한 기회로 독서 모임에 초대받게 되어 이 책을 접하고 꾸역꾸역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저자와의 첫 만남은 심리학과 복학생으로 학교에 돌아왔던 2007년, 인지과학 개론 강의를 맡으셨던 이정모 교수님이 권장도서로 추천해주셨던 '빈 서판'이었다. 한 절반쯤 읽다 포기했던 것 같다. 입대 전 전공 공부를 소홀히 했던 나로서는 인자하신 끝판왕 괴수 같은 노교수님의 수업을 따라가기도 그저 벅찼다. 당시 인지과학 수업은 나에게 엄청난 지적 도전으로 다가왔다. 석사 과정에 진학해서도 종종 얘기하곤 했다. 비록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 채 3할도 다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내 시야를 크게 넓힐 수 있었던 정말 유의미한 경험이었다고. 작년에 영면하셨을 때 빈소에 찾아뵙진 못했지만, 그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먼발치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표현이 그분의 세계관과 믿음에 잘 들어맞진 않을 것 같지만, 부디 영면하시길. R.I.P


뒤늦은 숙제를 하듯 이 책을 읽어나갔다. 2007년으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기억들이 의식의 흐름을 치고 들어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추억, 이불킥, 흑역사, 이런 잡다한 것들이 두꺼운 텍스트로부터 촉발되어 다 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면 연합주의를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저자는 서론에서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책을 쓰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지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쓴 것도 아니고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만 쓴 것도 아니다. 나는 학자와 일반 독자 모두가 마음을 정확히 알고 그 지식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킴으로써 이익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는 전문가와 생각이 깊은 일반인의 차이가 거의 없다. 요즘 우리 전문가들은 인접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도 아마추어보다 크게 나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흡수한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 12년 만에 데이비드 마의 시지각 이론 강의 파일을 다시 열어본 나는, 다시 봐도 역시 어렵다ㅠ. 단지 어렵다기보단, 깊이 있고 논쟁적인 주제들이 너무 자세하게 많이 기술되어 있어 다 흡수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나같이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핑커의 책은 다 읽고 나도 허탈함이 남는다...


요약은 더욱 안 될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던 97년 당시, 학계에서도 논쟁적인 주제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 지적 호기심이 높은 일반인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이런 글을 요약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그냥 솔직한 소감을 풀어서 독후감을 적어본다.



1.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2장 '생각하는 기계'에서 저자는 인간의 의식을 아주 미세한 수준까지 파고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장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 의식, 자아, 자유의지, 의미, 지식, 도덕성을 제시한다. 이 모든 주제는 과거 철학의 소재였으나, 이제 철학이 줄 수 있는 설명은 한계가 명확하다. 저자는 다시 이 난제들에 대한 '종교적 해답'들이 궁색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다음의 모든 시도는 논리적 한계가 명확하므로 과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1) 신비한 존재들은 이 세계의 환원 불가능한 부분이므로 그냥 그대로 놔두자

2)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3) 그 문제를 우리가 풀 수 있는 것으로 축소하는 것


핑커가 선택한 답은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이 그런 개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지적 장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런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복잡한 것들을 풀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피엔스의 진화 대부분이 이뤄진 사바나 시절, 우리의 조상은 의식이나 자아를 놓고 설전을 벌이지 않았다. 그들이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발달시켰고, 서로 소통하기에 효율적인 허구의 개념들을 우연히 만들어냈을 뿐인 것이다. 그 허구의 개념들은 사피엔스 무리의 결속과 번영을 촉진하고 문명을 건설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파보면 너무 엉성하고 빈약한 개념적 토대 위에 서있어서 검증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앎'이란 무엇인가?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적고 만나서 몇 시간이고 토론을 하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 사실과 당위 사이에서.


핑커는 이른바 '표준사회과학모델', 20세기 후반 사회과학계에 가해졌던 정치적 검열 행위를 점잖게 비판한다. 당시 반전 열풍과 더불어 서구 사회를 휩쓸었던 낭만주의 사조는, 인간은 본래적으로 선하며 전쟁 같은 야만적 행위는 후천적으로 해로운 것들을 학습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런 생각들이 과학계에도 파고들어 이른바 '고상한 야만인 가설', 즉 '사모아인들은 살인, 강간, 전쟁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무리한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본성에 어떤 부정적인 것이 들어 있거나, 인간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이 유전으로 설명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금기이고 터부였다. 그 동기는 어렴풋이 이해된다. 20세기 내내 서구 사회는 나치, 파시즘, 전쟁의 악몽에 시달려 왔으니.


그러나 도덕적으로 옳은 주장과 합리적인 추론은 별개의 문제이며, 반드시 분리되어야만 한다. 도덕이 과학을 구속하는 순간 과학계는 전문가의 탈을 쓴 선전대로 전락한다. 그러나 합리성을 포기한 주장은 반드시 틀리게 되어 있고, 결국 도덕적으로도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칼 포퍼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회고해본다. 포퍼는 과학계의 지식 획득 방법을 가리켜 열린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했는데, 과학계가 포퍼를 저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였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선한 의지를 품고 사회 운동을 하는 분들이 진화심리학에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핑커가 97년에 적었듯, 진화심리학 이론은 페미니즘의 당위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사실과 충돌하는 당위 명제를 계속 밀어붙일 경우, 궁색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여지가 크다.



생각을 마무리하며.


인지과학이라는 주제는 너무 광대하고 매력적이었지만, 한 편으로 인지심리학의 연구 주제는 나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좀 더 재미있어 보이는 사회심리학을 선택해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니ㅠㅜ


사실 전공 공부하던 당시에는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작년 즈음부터 진화심리학에 부쩍 관심이 가서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진화와 도덕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기꺼이 두꺼운 책을 읽으실 분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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