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금)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총 13일간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EBC) 트레킹을 위한 여행의 출발.
오후 세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여덟 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물론 짐은 여러 번 싸고 풀고를 반복하며 애진작에 다 꾸려놨다. 하지만 공항까지 도착해 비행기를 타기까지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 긴 추석 연휴의 시작일에 길이 너무 막히면, 대기줄이 너무 길면, 두 개 합쳐 20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중 행여 사소한 사고라도 생긴다면, 무려 나흘 반의 연차를 쏟아부은 여정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 공항철도에서 체크인을 했다. 서울역 공항철도는 체크인, 수화물 송탁, 출국심사까지 원스톱으로 끝내고 인천공항까지 43분 만에 도착하는 직통열차를 운행한다. 만약 공항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무거운 짐이 부담이라면, 그리고 인천공항까지의 도로가 많이 정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서울역 공항철도는 훌륭한 선택이다.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약 열시쯤. 행여 대기가 길지 않을까 우려한 게 무색할만치 한산했다. 내 앞의 한 명이 수속을 마치고 바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대략 11시 20분경.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버렸다.
이륙까지 약 세 시간, 탑승까지 두 시간 반이 남았다. 여행 전에 만들어 둔 PP카드를 써볼 요량으로 마티나 라운지를 찾아보았으나 이미 줄이 한참을 늘어서 있었다. 최근 PP카드를 발급해주는 신용카드가 너무 유행한 탓에,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장씩 들고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는 PP카드를 쓸 일이 없을 것이라 궁시렁대며 푸드코트를 찾아 불고기비빔밥을 주문했다.
밥을 먹고 바로 탑승동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한 시간 반이 남았다. 전자책을 꺼내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기 시작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영화로 제작되어 추석 연휴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김훈의 소설이라면 싱거운 국뽕 감성의 영화로는 만들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것은 그만큼 흥행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과연 얼마나 잘 될까, 아침에 서울역에 오는 버스에서 ETF를 팔아 매입한 CJ E&M 주식은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얼마나 올라있을까, 등의 잡생각을 떨쳐내며 책의 도입부를 읽던 새, 어느덧 탑승구가 열렸다.
현지 시간 오후 6시경, 환승지인 광저우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시간은 약 두 시간. 일말의 주저함 없이 탑승동으로 향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중국 우육탕면을 맛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으나, 그러기엔 방금 먹은 기내식이 전혀 소화되지 않았다. 탑승동 한 켠에 앉아 다시 책을 펴고 읽자니 두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어느덧 해가 떨어진 공항 유리벽 너머로 내가 탈 비행기가 보인다.
도착 한 시간 전쯤 남한산성을 다 읽어치우고 맥주도 한잔 했다. 이제 히말라야로 올라가면 고산증 예방을 위해 음주는 일절 금지라고 하니,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제 최소 열흘은 술냄새도 맡지 못할 것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각 오후 11시경. 비행기에서 내려 앞 사람들을 따라 죽 걸어가니 곧 비자 신청을 위한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번호표를 출력한 다음, 줄을 선 상태에서 입국 허가서를 작성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런 건 참 유난히도 부지런을 잘 떠는 것 같다. 생각보다 신속하게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비자 수수료를 받는 데스크에서 15일 비자 수수료로 미화 25달러를 지불한 뒤 영수증을 받아 들고 입국심사관에게로 갔다. 심사관은 거의 한 마디도 묻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줬다. 하긴 적은 내용이나 하고 있는 행색을 보았을 때, 너무도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가. 난 히말라야에 간다. 나말고도 여기 줄 서 있는 외국인 거의 모두가 그러하듯.
공항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온 탓에 날씨는 장마처럼 후텁지근해서, 입고 있던 반팔 히트텍 티셔츠가 금세 땀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픽업하러 나온 여행사 사장님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행사 차량을 타고 편하게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좀 넘은 시간으로,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자다 일어나서 나를 맞았다. 짐을 풀고 씻고 얘기를 좀 나누니 어느덧 새벽 한 시가 조금 지났다.
기상 시간은 오전 5시 30분. 아침에 곧바로 국내선을 타고 루클라(2,840m)로 날아가 트레킹을 시작한다. 피곤한 몸이 잘 버텨줄까, 걱정 어린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