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팍딩

2017.09.30 (토)

by 이승환

찬이 불을 켜며 나지막이 말했다.


"일어나시죠 형님"


잠시 눈을 감고 누워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방금 씻었으니까 또 씻을 필요도 없고 어차피 시간도 없다. 주섬주섬 주워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숙소 주인장과 몇 마디를 나누고 문밖을 나서니, 골목길 입구 어귀에 이미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 하품하듯 뒷문을 위로 활짝 열어젖힌 채.



지친 몸을 뒷좌석에 구겨넣고 공항으로 가는 사이, 앞으로 13일의 트레킹을 안내해 줄 가이드와 인사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시리. 뭐든 물어봐도 척척 답이 나올 것 같은 이름이다. 곧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국내선 루클라행 경비행기를 탈 차례다. 이 카트만두발 루클라행 비행기는 여러모로 말이 많다. 15인승, 잦은 결항,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항(해발 2,880M), 가장 위험하고 악명 높은 40여분의 비행 등등.


카트만두-루클라 노선의 필요조건은 인내심이다. 우리는 7시 30분 편을 예매했지만 9시 30분에야 탑승할 수 있었다. 갖은 잡담을 떨며 피곤함과 지루함에 지쳐가던 즈음 겨우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비행기를 탄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로부터 이틀 뒤 남체(3,430M)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헤드랜턴을 밝힌 채 깜깜한 밤을 뚫고 온 한 무리의 백인들로부터 우연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 이후로 단 한 대의 비행기가 떴는데, 그게 이날의 마지막 비행기였다. 그로부터 이틀간 비행기가 뜨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기다리다 발을 돌렸고, 그 백인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헬기를 빌려서야 간신히 그 시간에 남체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버스처럼 아담한 경비행기


이륙 후 프로펠러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비행기가 마을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어, 지상이랑 이렇게 가까이 날아도 되는 건가? 어어, 바로 옆에 집이 있잖아? 어어어 어...' 하는 사이, 우리를 실은 비행기는 순식간에 '쿵' 소리를 내며 활주로에 떨어졌다.


루클라 공항은 한국의 지방 소도시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느낌이다. 크기도 딱 그만하다. 마을버스 같은 경비행기 4대가 들어오면 더 이상 자리가 없다. 시리를 따라 공항 밖을 나서 몇 발짝을 걷지 않아 바로 앞의 건물로 들어가니, 오늘 점심식사를 할 곳이라고 했다. 히말라야에서 처음 만난 롯지(Lodge)였다.


트레커는 대부분 이 롯지라는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잠을 자는 롯지에서 밥도 사 먹는 게 불문율이다. 숙박료는 싱글베드 두 개 짜리 방 기준으로 1박에 500루피(대략 5 USD) 전후, 식사메뉴도 저렴한 것은 1인분에 500루피 전후로 해결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핫 샤워, 충전, 와이파이 등을 유료로 제공한다.


처음 들어간 롯지는 티벳식과 서양식 메뉴를 제법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사람 수대로 네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달밧(녹두로 만든 커리 비슷한 음식), 모모(티벳 만두), 참치 피자(다소 당황스럽지만 예상 가능한 맛이다), 라라 누들(토마토 수프에 국수를 말아 나왔다)을 주문해 먹었다. 티벳음식은 생각보다 입에 꽤 잘 맞았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넷이서 서로의 음식을 한 스푼씩 덜어다 먹으며 서로의 메뉴를 골고루 맛봤다.



다 먹은 다음엔 마살라 티를 미디움 팟으로 주문해 마셨다. 이 동네는 차 문화가 발달해서 어느 롯지를 가나 다양한 차 메뉴를 갖추고 있다. 마살라 티는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메뉴인데, 한국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파는 차이티 라떼와 거의 같은 맛이다. 미디움 팟으로 주문하면 큼지막한 보온병에 내온다. 네 명이 둘러앉아 몇 잔씩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 적당한 양이다.


차를 마신 후 포터들에게 줄 배낭을 열어 짐을 다시 한번 나눴다. 간밤에 숙소에서 짐을 줄인다고 이것저것 많이 빼냈는데도 여전히 상당히 무거웠다. 포터에게 줄 배낭은 15KG를 넘기지 않는 게 관례라고 한다. 무게의 정량에 대해서는 15KG이니 20KG이니 사람마다 말이 많으나, 내가 들어보니 15KG도 충분히 무겁다. 출국할 때 이미 15KG 밑으로 맞춰 짐을 싸왔으나, 우리의 경우 3명의 포터가 4명의 짐을 나눠져야 하기 때문에 무게를 더 줄여야 했다. 그리고 간밤에 부랴부랴 다시 꾸린 짐은 3개의 배낭에 무게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게를 골고루 나눠줄 필요가 있었다. 짐을 다 꾸리고 출발할 즈음 하늘을 보니 당장이라도 빗줄기가 떨어질 듯 흐릿해져 있었다. 포터들은 비닐봉지를 꺼내 배낭에 씌우더니 우리보다 앞장서 출발했다. 오늘의 행선지는 팍딩(Phakding).


팍딩(2,610M)은 루클라(2,840M) 보다 고도가 낮다. 덕분에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쉬운 길을 걸었다. 오늘 목표로 한 운행 시간은 약 4시간. 한 시간 남짓을 걸었을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쉬면서 우비를 꺼내 입고 배낭에도 레인커버를 씌웠다. 일행 모두 기능성 의류로 온 몸을 둘러싸고 왔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걸 무시하면 안 된다.


어느덧 비가 그쳤다. 완만한 내리막 후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걷자니 오늘의 목적지인 팍딩에 도착했다. 날이 흐린 탓에 오는 길에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안개 같은 구름 떼가 발치를 지나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아 여기가 한라산보다 높은 곳이었지' 정도의 감회가 스쳤을 뿐.


팍딩에서 묵은 롯지는 2층의 낡은 목재 건물로, 나름 개인 화장실을 갖춘 방을 내줬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한국에서의 가장 비슷한 예는 아마도 대학 새내기 때 경험한 우이동 엠티촌일 것이다. 아니, 우이동이 더 낫다. 방에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으니 포터도 따라 들어와 배낭을 풀어놓고 갔다.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 주문을 하고 핫 샤워를 했다. 샤워실은 한 번에 한 명만 이용할 수 있는 허름한 가건물이었다. 문 위로는 계곡의 한기가 새어 들어왔다. 이제부턴 다 감지덕지다. 더 올라가면 고산증 예방을 위해 샤워도 금지다.


우이동이 더 낫다


사실 정말로 감지덕지할 일은 식사 후 맛봤던 캔맥주였을 것이다. 식사 후 사람 수대로 네 캔을 주문했다. 밥값보다 비쌌고 한국의 술집보다도 비쌌던 이 맥주의 이름은 쉐르파 비어. 두 캔만 마시고 나머지 두 캔은 반납했다. 웃고 떠들고 즐기는 와중에도 일정에 대한 부담감과 일말의 조심스러움을 내려놓지 못한 탓이다.


Sherpa Beer. 엔젤링이 지나친건 얼었다 녹은 탓이다.


적당히 마시고 떠들다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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