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조르살레

2017.10.01 (일)

by 이승환

오전 6시 30분경 일어나 짐을 꾸리고 7시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전날 저녁식사 후 미리 주문해두었던 샌드위치와 오믈렛, 티베탄 브레드 등을 먹은 후 다시 방으로 올라가 이를 닦았다. 밖을 내다보며 칫솔질을 하고 있자니, 저만치 골목길 입구에 짐을 잔뜩 짊어진 짐승 무리와 사람 몇이 보인다. 저 짐승의 이름은 좁키오, 고산지대에 사는 야크라는 녀석과 저지대에 사는 소를 이종 교배한 녀석이라고 한다. 아마도 트레킹 내내 가장 자주 마주친 짐승이었을 것이다. EBC 트레킹 코스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은 대부분 짐승과 사람의 몫이다. 비행기가 들어오는 것은 트레킹 코스의 출발지인 루클라까지이고, 그 이후부터는 사람과 짐승만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이기 때문이다.

좁키오 무리. 물자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녀석들이다.


채비가 좀 늦어져 오전 8시 30분경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조르살레(해발 2,740M). 매우 보수적인 일정이다. 대개의 경우 아침에 팍딩에서 출발하면 점심에 조르살레에 도착해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해 오후에 남체(해발 3,440M)까지 들어가는 일정을 택한다. 본래 우리가 계획한 일정도 그랬다. 그러나 전날 저녁 논의를 하던 중, 우리는 하루짜리 일정을 반나절로 줄여버렸다. 수면 고도 적응과 체력 안배 때문이었다. 급격한 수면 고도 상승은 고산증을 초래할 수 있는데, 팍딩(해발 2,610M)에서 남체(해발 3,440M)까지 약 800미터의 고도를 하루 만에 올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고도 상승의 대부분은 조르살레~남체 구간에 이뤄지는데, 약 3시간에 700미터의 고도를 올리는 급경사 구간이다. 초반부터 무리하다 체력 조절에 실패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우린 오늘의 일정 축소를 합의했고, 점심까지 조르살레를 목표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팍딩에서 조르살레로 가는 길은 몬조(2,840M)까지 2시간 30여분의 완만한 오르막 후, 조르살레(2,740M)까지 30여분의 내리막이 이어진다. 아직 고도가 낮은 지역이라 가는 길에 수시로 롯지촌이 등장한다.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나마스떼'하고 인사하며 먹을 것을 건네주기도 하고 준비해 간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일행 중 여자 둘(율과 혜정)은 지역 아이들을 위해 형광펜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겨 왔다. 선물을 받아 든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하다.

형광펜 선물을 받아 들고 바로 뭔가를 그리고 있는 동네 아이들


2시간쯤 걸은 뒤 한 길가의 롯지에 들러 따뜻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몬조에 있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관리소에서는 입장 허가서(Permit)를 발급받았다. 시리가 우리 네 명분의 수속을 마친 뒤 다시 출발, 약 30여분 뒤 이날의 목적지인 조르살레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약 12시 30분. 조르살레는 계곡가에 있는 작은 롯지촌으로 여기서 묵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점심을 해결하고 남체까지 올라간다. 앞서 적었듯, 우리가 여기서 묵는 이유는 고도 적응 때문이다.


조르살레에서 묵은 롯지. 오른켠 숙소 뒤로는 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점심을 먹은 뒤 다음날 갈 길의 사전답사에 나섰다. 약 세 시간 거리의 급경사 구간인데, 절반 정도만 올라갔다 돌아오기로 했다. 이 역시 고도 적응의 일환이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쉰 후 마실 물만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흔들 다리를 하나 건너자 바로 비탈길이 시작되었다. 포장이 잘 되어 있지 않고 비까지 내려 길이 매우 질척거렸다. 시리에 따르면 이 길은 최근에 새로 생긴 길로, 옛길에 비해 약 30분을 단축한다. 그런데 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좁은 비탈길 사이사이로 짐승 똥이 무시무시하게 싸질러져 있었다. 이 녀석들이 높은 길을 오르면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다가 직장에 힘이 들어가는지, 유독 험한 길에 배설물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것들을 피해 다니느라 가뜩이나 힘든 진창길을 더 힘들게 걸었다. 짐승 똥을 피해 다니느라 애를 먹는 우리를 본 시리가 내려올 때는 다른 길로 오자고 했다.


조르살레~남체의 중간 지점에는 아찔한 흔들 다리가 놓여 있었다. 위로 올라가면 이런 다리는 숱하게 건너 다녀 이내 적응이 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적응이 덜 되었을 때다. 다리를 건너다 밑을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오금이 저렸다.


히말라야의 흔한 흔들다리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다리 건너편으로 넘어가 사진을 찍으며 노닥거리자니 바람이 불어와 금방 서늘해졌다. 곧 조르살레를 향해 뒤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다른 길을 택했다. 아까 올라온 길은 산비탈을 바로 넘는 길이었는데, 이번에 택한 길은 물가를 따라 우회하는 길이었다. 올라올 때 길에 비해 걷기가 한결 수월하고 경관도 수려했다. 내일도 이 길로 오자는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롯지에 도착해 씻고 저녁을 먹었다. 이 롯지는 시설이 노후해 샤워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뜨거운 물을 끓여 양동이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른바 빠께스 샤워. 열악한 환경이지만 씻을거냐고 물어보니, 찬만 빼고는 모두 씻는다고 한다. 그래, 씻을 수 있을 때 씻어둬야지. 내 지론은 이런 열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뭔가를 할 수 있을 때라면 일단 다 해두는 게 좋다는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는가. 씻을 순서를 정한 뒤 저녁 메뉴로 볶음밥, 라라 누들, 오믈렛, 토마토소스 파스타, 팬케익을 주문했다.


음식은 괜찮았다. 특히 볶음밥과 라라누들이 훌륭했다. 네팔 사람들은 동남아 지방에서 먹는 가늘고 찰기 없는 쌀을 먹는다. 이 가늘고 찰기 없는 쌀은 밥알 한톨한톨에 기름을 알차게 코팅해내야 하는 볶음밥의 미덕을 충실히 구현한다. 트레킹 내내 어느 롯지에 가서 어떤 볶음밥을 주문해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한편 라라 누들은 닭 육수 국물을 우려낸 것이 꼬꼬면과 비슷한 맛이었는데, 이 집에서 먹은 것이 가장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란과 소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토마토소스 파스타, 라라누들, 오믈렛


저녁 식사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방문을 살짝 열어 뒀더니 동네 개가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와 방문 앞에 자리를 잡고 누워버린다. 이 동네 짐승들은 길바닥과 사람의 공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다는 점만 빼면, 히말라야 개팔자는 한국 개보다 좋지 않을까 싶다. 잠을 청하던 녀석을 툭툭 밀어내 밖으로 내보내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미안, 옆 방이 비었으니 더 넓은 곳으로 가 편히 쉬렴.


저녁식사를 마친 뒤 다음날 일정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포터들의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는 얘기가 나와, 불필요한걸 더 줄여보기로 했다. 난 기모가 들어간 동계용 바지를 뺐다. 만년설이 있는 지역이라 방한 준비를 철저히 해왔으나, 시리 말을 들어보니 올라가도 그렇게 많이 춥진 않다고 한다. 모두들 짐을 조금씩 덜어 비닐 봉투 하나에 모았다. 이 롯지에 맡겨두고 내려오는 길에 찾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대략 저녁 8시경, 전날과 같이 침대에 누운채 책을 읽다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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